[세상만사-김남중] 김구라가 사는 법

입력 2016-01-07 17:54 수정 2016-01-07 20:55

지난 연말 여러 연예인들이 시상대에 올랐다. 김구라가 MBC ‘연예대상’을 받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많은 분들이 제 방송 방식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안다. 여전히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수상 소감에서 본인이 말한 대로 김구라는 방송계의 문제적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그래서 MBC가 그에게 대상을 준 것은 김구라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졌음을 얘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구라의 대상은 연예계 입문 후 22년 만에 거머쥔 상이었다. 이혼 등 가정사의 최대 위기 속에서 일궈낸 생애 최고의 상이었고, 무엇보다 끈질긴 악평과 무수한 사고를 건너 도달한 상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대상은 한 인간의 승리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김구라는 1993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으나 11년을 무명으로 지냈다. 그 기간에 ‘지하 방송’에 가까웠던 인터넷 방송에서 일했고, 인기를 얻어 2004년 지상파 방송에 진출했다. 그리고 11년 만에 대상을 받았다. 유명 연예인 가운데 그보다 더 낮은 지점에서 출발해 그보다 더 멀리 나아간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김구라는 인터넷 방송을 하던 때 쓰던 ‘구라’라는 이름을 그대로 달고 지상파에 들어왔다. ‘구라’ 같은 저속하고 삐딱한 이름을 달고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김구라는 그 이름에 묻어 있는 자신의 ‘흑역사’마저 고스란히 승계했다. 그래서인지 마이너리티, 언더, 비주류에 대한 그의 감수성은 각별한 데가 있다.

김구라가 “심장과도 같다”고 말하는 ‘라디오 스타’(MBC)는 2007년 시작돼 방송계에 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린 프로그램이었다. ‘라디오 스타’는 지금은 유행이 된 ‘막말 방송’의 원조가 됐다. 김구라는 방송에서 해도 괜찮을까 싶은 얘기들을 서슴없이 던졌고, ‘방송’과 ‘방송 불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무례하다거나 민망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졌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는 듯이 “싫다” “아니다”를 분명하게 말했다. 욕먹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기 욕망과 감정을 드러내는 걸 경계하지 않았다. 또 사람들이 체면 때문에 하지 못하는 말, 감추고 싶어 하는 얘기들을 한사코 끄집어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주었고, 그게 그의 인기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김구라는 독설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했지만, 그의 말이 검열과 금기에 길들여진, 지나치게 안전한 방송 언어를 혁신하고 확장한 것 또한 사실이다.

2011년 말 종편이 출범할 때, 스타급 연예인들은 종편행을 주저했지만 김구라는 과감하게 진입했다. 김구라가 진행하는 ‘썰전’(JTBC)은 ‘히든싱어’와 함께 종편에서 최초로 성공시킨 예능 프로그램이 되었다. 어느새 종편은 예능의 신천지로 변모했고, 스타 연예인들이 앞다퉈 몰려오는 곳이 되었다.

김구라는 확실히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런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대중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자신의 감정과 생각, 가치관을 분명하게 드러내도 괜찮다는 것, 논란을 피하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얘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 비평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그들과 토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 때론 그런 게 훨씬 더 멋지다는 것을 그는 보여줬다. 김구라는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가 그랬듯이 연예인이기 이전에 보통의 인간으로 남고자 했고, 그것을 자신의 이미지로 만들었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