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칼럼] 꿈의 오해와 그 진실

입력 2016-01-08 18:47 수정 2016-01-08 21:19

새해가 되면 누구나 꿈을 꾼다. 연초에는 어디 가나 꿈 이야기가 단연코 많다. 꿈 이야기는 듣기 좋다. 누구나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 바란다. 꿈은 희망이고 기대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좌절이기도 하다. 구약 성경, 요셉의 꿈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희망보다 좌절을 준다. 요셉이 미움을 받았던 이유도 그 꿈에 비추어진 형들의 상대적 왜소함 때문일지 모른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멋진 슬로건으로는 좋지만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일 때가 더 많다. 요셉이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하나였다는 말은 꿈은 아무나 꾸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형들은 그를 향하여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고 했다. 칭찬이 아니라 꿈을 꾸는 자에 대한 빈정거림이 섞여있다. 꿈 이야기는 희망보다 절망을 많이 담고 있다. 대개는 청년들에게 요셉처럼 큰 꿈을 꾸라고 다그치지만 현실은 꿈과 거리가 멀다. 꿈은 어린 소년의 낭만에 더 가깝다. 요즘 아이들은 옛날 같이 커서 대통령 되겠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을 만큼 현실적으로 변했다. 주변을 돌아보면 냉혹한 현실에 서서 꿈의 비현실성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자가 한 둘 아니다.

젊은이들이 흔히 말하는 7포시대다. 거창한 꿈은 고사하고 일상의 평범한 꿈마저도 포기를 강요받는 사회다. 꿈을 꿀 자유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유행어가 떠돌아다니는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신명 나지 않는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식상해지고 신파조로 들린다. 꿈의 배신을 경험하고 나면 사람들은 꿈 이야기를 거부한다. 꿈이 사라진 세상은 절망과 분노사회로 바뀐다.

꿈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의 새해는 아직 동이 트지 않았다. 꿈을 잃은 사회의 얼굴은 밝기보다 두려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요즘 이런 현상에 대한 심리학적인 접근들이 많아졌다. 베스트셀러 ‘미움 받지 않을 용기’에서부터 심리학 책들이 줄을 잇는다. 세상이 불안하다는 뜻이다. 얄궂은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바꾸라는 말로 들린다. 삶이 불안해지면 헛것을 본다. 심리적 불안감은 미래를 향한 꿈보다 어제의 삶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제가 불안했던 삶은 다가오는 내일이 불안하다. 불길한 꿈을 꾸는 사람은 피해의식에 젖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꿈은 강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워야 한다. 꿈은 내가 꾸는 것이 아니라 꾸어지는 것이다. 꿈은 상처를 전제한다. 꿈은 시련을 맞는다. 섣부른 꿈의 폐해가 너무 크다. 수 없는 꿈의 유산으로 인한 아픔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볼 때가 있다. 꿈보다 일상의 하루하루가 단단해져 가는 삶, 실패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 실패를 해도 아무 일 없었던 것 같이 그를 받아주는 세상이 꿈을 꾸는 행위보다 더 중요하다. 삶이 내편이 아닌 것 같아도 그래도 내일의 시간을 향해 힘겹지만 한 걸음 내딛기만 한다면 거창한 꿈 보다 낫다.

한국은 지금 가파르게 오르던 경제성장에 빨간 불이 켜지고, 치솟은 경제적 성장만큼 오르지 못한 국민행복지수는 바닥을 여전히 치며 원인이 분명하지 않는 열병으로 고통하고 있다.

새해가 되어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공약을 해도 세상은 더 좋아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산다는 것 자체가 위기다. 만만한 것은 없다.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공허한 공약이나 보장보다 지금 각자 앞에 놓여진 오늘이라는 시간에 지극한 공을 들이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공허한 꿈은 폭력이다. 조급한 꿈의 성취를 약속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흔들리는 현실을 내치지 말고 더 따뜻하게 끌어안아야 할 때다. 꿈에 끼여 있던 허영을 닦아 내고 좀더 차분해져야 할 때다. 낭만적 꿈을 꾸며 허공을 멍하게 바라보는 시간 보다 무릎을 꿇고 일상의 밭을 일구는 치열함과 성실함이 내일이라는 시간을 꿈의 형태로 바꾸는 위력적인 삶이다. 오늘을 탄탄하게 보낸 사람에게 내일의 세상은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한해의 출발지점에서 영화 ‘히말라야’에서처럼 실패를 무릅쓰고 오르는 용기와, 조셉 마샬의 책 이름처럼 “그래도 계속 가라”를 속으로 되뇌인다. 여전히 열려있을 희망의 문을 향해….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 목사)

약력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아시아언어문화연구소 이사장 △전 시드니새순장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