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보면 ‘사춘기 아이가 너무 밉다’ ‘맘에 안 드는 짓만 골라 하니 꼴도 보기 싫다’는 부모들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한 어머니는 “이런 마음으로 함께 사느니 아이를 해외연수나 기숙형 학교로 보내 버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아이와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다.
사춘기에 들어선 자녀를 예전처럼 예뻐하기는 쉽지 않다. 적지 않은 부모들이 사춘기 자녀에게 못마땅함을 넘어 미운 감정을 느끼곤 하는데, 이런 마음은 죄책감과 혼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사랑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춘기 자녀를 보면 견디기 힘든 분노가 차오르는 것이다. 그러면 예민한 센서를 가진 아이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화의 언어들이 모두 튕겨나오기 십상이다. 그리고 아이와의 관계 고리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게 된다.
불과 몇 개월 전에는 그토록 사랑스럽던 아이가 ‘우리 이제 헤어지자!’고 선언하고 싶어질 만큼 달라져 버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심리적으로 볼 때 ‘자녀와의 이별’은 수차례에 걸쳐 일어나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다만 시기마다 이별의 이유와 방식이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사춘기 시절 이별이 유난히 힘든 이유는 ‘반항과 거부’라는 방식으로 새롭게 생성된 자녀의 인격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랑스럽고 예쁘던 내 아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싶은 독립된 인격체가 나타난다. 이젠 ‘내 아이’가 아니라 대등한 인격체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사춘기 아이는 사회화된 자신만의 타고난 성향을 드러내면서 부모와 경계를 짓는다. 부모와 닮은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취향과 특성, 습관을 가진 개별 인격체로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시편 139편의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아이의 오장육부를 지으시고, 아이만의 개별적 특성을 빚어놓으셨다. 이제 그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아이를 보며 부모가 할 일은 사춘기 이전의 자녀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만남을 환영하며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이제 이 아이와 헤어지고 싶다’는 부모의 바람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린시절 순종적 아이를 되찾고 싶은 감정적 언어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단칼에 잘라내듯 물리적인 거리를 만들어 갈등을 해결하려는 것 또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부모가 원하든 아니든 이별은 불가피하다. 부모들에게 남은 문제는 이별의 의미와 새로운 만남에 대한 수용, 해석일 것이다.
청소년 부모들이여, 지루한 감정의 굴곡을 오고가며 이루어지는 ‘자녀와의 이별’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자.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15세상담연구소장)
[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우리 이제 헤어져
입력 2016-01-08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