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4차 핵실험을 새해 벽두인 1월 6일 오전에 감행했을까. 과거 핵실험 ‘타이밍’을 보면 북한 내부의 권력 사정과 한·미의 정치 스케줄과 유독 연관이 많았다.
일단 조선중앙TV가 밝힌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수소탄 실험 명령 시점은 지난해 12월 15일이었고, 최종명령서에 서명(1월 3일)하자마자 곧바로 실험 준비에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미 군사훈련 키리졸브가 매년 봄 실시되고, 올해 5월엔 7차 노동당 대회가 예정돼 있어 이런 대외 일정도 감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김 제1비서의 생일이 핵실험 시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북한이 김 제1비서 생일인 1월 8일을 이틀 앞둔 6일을 수소탄 실험일로 정한 것은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의미”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어 “북한이 핵실험 날짜를 정하는 데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도 했다. 1차 핵실험은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 하루 전에, 3차 핵실험은 2011년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4일 앞두고 실시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김 제1비서가 수소탄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5년 만에 명실상부한 지도자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지금까지 네 차례 핵실험이 모두 오전 9∼12시 사이에 이뤄진 것은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표준시간대가 비슷한 중국에는 핵실험 속보를 보다 신속하게 알려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시간대가 다른 미국에는 저녁 무렵 북한발(發) 긴급뉴스를 보게 만들어 미국 행정부 차원의 신속한 대응을 방해하려는 속셈이 있다는 얘기다.
한·미 양국의 정치 스케줄과도 연관성이 있었다. 주로 대북정책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총선이나 대선 직전, 또는 대통령 취임일을 전후해 핵실험이 이뤄졌다.
1차 핵실험은 미국의 중간선거(2006년 11월 7일)를 한 달 앞둔 시점에, 2차 핵실험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2009년 1월 20일) 4개월 뒤에 일어난 식이다. 3차 핵실험이 있던 때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2기 행정부가 출범(2013년 1월 21일)한 직후이자 박근혜 대통령 취임(2013년 2월 25일) 직전이었다. 올해 역시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총선이, 미국은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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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07 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