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산증인이 여기 있습니다. 이제 88세입니다. 운동하기 좋은 나이입니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6일 오후 12시30분쯤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 24주년을 맞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1212번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가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8) 할머니가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정치인과 시민 1500여명이 평화의 소녀상 앞을 가득 메웠다. 이번 수요집회는 세계 13개국, 41개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정대협의 수요집회가 끝난 오후 2시쯤. 소녀상 주변은 갑자기 아수라장이 됐다. 어버이연합과 재향경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 40여명이 소녀상 쪽으로 진입을 시도하며 이를 막아서는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해 협정 타결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외쳤다.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문재인 이하 좌파는 각성하라”는 구호도 터져 나왔다.
어버이연합의 한 회원은 “수요집회 참가자 중 몇몇은 세월호 추모 노란리본을 달고 있더라. 위안부 문제가 정치화됐다는 증거”라고 했다. 다른 회원은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고 북한을 찬양하는 세력이 정대협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다”며 “역대 정권이 하지 못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에 의의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장기 집회’로 24년을 이어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를 놓고 ‘좌파’ ‘친북세력’ 등의 단어가 사용됐다.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보수-진보’ 진영 논리가 마침내 인권 문제인 위안부 이슈에까지 침투한 것이다.
보수단체들의 성명에는 한국 정부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일본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논조로 발표됐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죄를 할 때만 수용 가능하다”며 “돈을 앞세운 일본의 행태는 대한민국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어버이연합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그의 외조부이자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를 몽둥이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수요집회가 엉뚱하게 이념 갈등에 휩싸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다. 시민 박모(38)씨는 “위안부 문제 해결은 역사의 잘못을 바로잡는 ‘사실’의 한 부분인데 어느새 ‘이념’의 문제로 변질되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했다.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당시 일본 총리 방한을 계기로 시작한 수요집회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열렸다. 단일 주제로 벌이는 집회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 정대협은 일본 정부에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등 7가지 사항을 요구해 왔다.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24년 동안 할머니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빌 때도 뒷짐만 지고 있던 한국 정부는 굴욕적인 협상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대협 측은 일본이 주는 10억엔이 아닌 우리 국민의 성금을 모아 자체적인 재단을 만들 계획이다. 윤 대표는 “위안부 문제가 완벽히 해결될 때까지 수요시위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위안부의 눈물’ 수요집회에… “합의 지지” 외친 보수단체
입력 2016-01-06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