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4차 핵실험] 北 “핵 포기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 있을 수 없다”

입력 2016-01-06 21:33 수정 2016-01-07 00:49
북한이 6일 기존 핵무기에 비해 폭발력이 훨씬 더 강한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해 진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러시아가 공개한 수소탄 AN602의 실물크기 모형.연합뉴스

북한은 과거부터 집요하게 핵무기 개발에 매달려 왔다. 미국은 물론 남측과의 체제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고, 몰락하는 사회주의 국가들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맹신해 왔기 때문이다. 한·미 연합군의 북침으로 인한 체제 궤멸을 막기 위한 유일한 생존 수단으로도 여겨왔다.

북한이 6일 4차 핵실험 발표 성명을 통해 “미국의 극악무도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근절되지 않는 한 우리의 핵개발 중단이나 핵 포기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감행한다. 이어 2009년 5월 25일, 2013년 2월 12일 등 약 3∼4년 주기로 핵실험을 시도했다. 이번 핵실험 역시 3차 핵실험 이후 3년 만에 시행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2차 핵실험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 후 3·4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박지영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1980년대 기폭실험을 시작으로 오랜 준비기간을 거친 후에 3∼4년마다 핵실험을 감행하며 매번 진보된 기술력을 보이고 있다”며 “향후 완성단계에 들어가면 기술개발 주기가 짧아져 2년 내에 다시 한 번 실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1950년 6·25전쟁 이후 핵무기에 관심을 가진 북한은 1993년 3월 12일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다. 2002년 12월 12일 핵동결 해제, 2005년 2월 10일 핵무기 보유 선언, 이어 플루토늄 방식의 1차 핵실험으로 단계적으로 나아갔다.

1차 실험 직후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고 궁지에 몰린다. 2007년 7월 15일에 영변 원자로를 폐쇄했고, 같은 해 10월 3일 6자회담에선 핵시설 불능화 및 핵 프로그램 신고에도 합의했다. 2008년 6월 7일에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하지만 불과 석 달여 만에 상황이 반전된다. 북한은 그해 9월 24일 영변 원자로 봉인을 해제하고, 2009년 4월 5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자 한 달 뒤엔 다시 2차 핵실험으로 내달렸다. 2012년 12월 12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하자 2013년 2월 12일엔 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분위기를 탐색하고, 유엔 제재가 이뤄지면 더욱 강력한 핵실험으로 응수하는 전략이 한동안 이어졌다.

김 제1비서는 2013년 3월 ‘핵·경제 병진 노선’을 발표한 뒤 탄두의 경량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거기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 발사 수단의 다각화, 수소탄 개발까지 착수하면서 전방위적 핵전력화에 나선 것이다. 김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중국이 절대 자신들을 버리지 못하리라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며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 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을 얻어내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