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하이테크 커닝이 주입식 교육 바꿀까

입력 2016-01-08 04:00 수정 2016-01-08 11:25



늦은 밤 묵직해진 눈꺼풀을 붙들고 시험공부를 해봤다면 한번쯤 상상했을 겁니다. "어디 완벽한 커닝 방법 없을까?" 공무원이나 경찰 채용시험 등 인생을 좌우할 시험이라면 이런 상상이 더 달콤하겠지요. 평생 따라다닐 '학벌'이 걸린 수능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런 유혹 때문에 수능은 커닝 등 부정행위를 철저히 차단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입니다. 다만 갈수록 기술이 발전하고 있어 교육 당국의 고민도 깊습니다. 소위 '하이테크 커닝'이 등장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서죠. 하이테크 커닝이 과연 가능한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전문가들과 함께 '불온한 상상'을 해봤습니다.

‘완벽한 커닝’ 존재하나

완벽한 커닝을 가능케 할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①고사장 밖에 문제를 풀어줄 ‘고수’를 대기시킨다. ②수험생은 고사장에 카메라와 송수신 장비를 갖고 들어간다. ③수험생이 문제를 사진으로 찍어 고수에게 전송한다. ④고수로부터 정답을 전송받아 답안지에 적는다.

이 시나리오를 수능에 적용해 볼까요. 고사장에 장비를 갖고 들어가는 게 첫 관문입니다. 유명한 스파이카메라 업체 D사의 대표 S씨(50)에게 과연 가능할지 상담해봤습니다. 그는 “몰카가 내장된 건데 찾아보라”며 자사 스파이카메라 제품 3개를 내밀었습니다.

먼저 모자. 렌즈가 알파벳 장식 사이에 교묘히 숨어 있습니다. 점 하나 크기로 렌즈가 있다고 알고 봐야 보였습니다. 다음 손목시계. 시계는 ‘6’자의 동그란 부분에 렌즈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뿔테 안경은 육안으로 ‘식별 불가’였습니다. 안경테가 마치 빨대처럼 안쪽이 비어 있습니다. 그 안에 카메라가 내장됐답니다.

카메라 렌즈에 빛을 반사시켜 몰카를 잡아내는 장비로 찾아보니 모자와 시계는 식별됐습니다. 하지만 안경은 이 장비로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동영상 저장장치와 배터리 때문에 귀에 거는 부분만 살짝 두꺼웠을 뿐 보통 안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제 문제지를 촬영해 사진을 전송할 차례입니다. S씨는 자동차 전자열쇠만한 장비를 보여줬습니다. 동영상 전송 장비인데 구두 뒤축이나 시계 등으로도 개조할 수 있답니다. 용량이 작은 사진을 전송하는 용도라면 크기가 더 줄어듭니다.

정답은 어떻게 받을까요. D사의 엔지니어가 S씨의 호출을 받고 ‘기술 자문’에 동참했습니다. 귓속형 수신기도 있고, 보청기 안에 넣을 수도 있답니다. 모스부호처럼 미리 약속한 신호를 받아 5지 선다형 문제를 풀면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도중에 합류한 엔지니어는 ‘쯧쯧’ 혀를 찼습니다. 쉽고 편한 방법을 두고 고민한다는 투였습니다. 그는 휴대전화를 옷에 내장하자고 제안했습니다. 10㎜ 정도 두께인 초박형 휴대전화에서 메인보드를 떼어내 천으로 덧대고 카메라, 진동자만 설치하면 ‘커닝 옷’ 완성이랍니다. 진동자는 정답 신호를 받는 기능을 합니다. 밖에 있는 고수와 시험을 같이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랍니다. 휴대전화 통신망을 쓰기 때문에 전파 차단의 위험도 별로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막을까

수능 감독관은 일반과목에 2명, 4교시 탐구영역에 3명입니다. 한 교실에서 시험 보는 인원은 28명으로 제한됩니다. 감독관 한 명이 9∼14명을 지켜보는 겁니다. 교실은 시험지 넘기는 소리만 들립니다. 조금이라도 행동이 부자연스러우면 시험 종료 후 소지품 검사를 받게 됩니다.

수험생은 필기구 같은 극히 제한된 물품만 소지할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 등 반입이 금지된 물품을 지니고 있다가 처벌된 인원이 2014년에만 102명이나 될 정도로 엄격합니다. 복도에 있는 감독관은 금속탐지기도 갖고 있습니다. 수험생이 시험 도중에 화장실에 가면 칸을 지정해주고 재입실할 때 금속탐지기로 검사합니다.

지금 수능의 부정방지책은 수백명이 연루된 2005학년도 집단 커닝 사태의 산물입니다. 이후 꾸준히 ‘업그레이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계는 디지털 방식이든 아날로그든 소지가 가능했지만 스마트시계 보급에 맞춰 이제 아날로그시계만 허용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부정방지책으로 ‘하이테크 커닝’을 막을 수 있을까요. 심리적 압박감을 극복하고, 철저하게 사전연습을 하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전자기기를 인체에 이식하는 시대가 온다면 대규모 부정행위는 시간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때문에 교육 당국도 언젠가 올지 모를 ‘하이테크 커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직 뚜렷한 해법은 없지만 거론됐던 몇몇 아이디어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먼저 공항의 보안검색대를 고사장에 도입하는 방안입니다. 모든 전자기기를 잡아낼 수 있어 강력합니다. 다만 비용이 문제입니다. 고사장 하나에 10대씩 설치해도 지난해 수능 고사장(1212곳) 기준으로 1만2120개가 필요합니다. 빌려올 데도 없습니다.

전파 차단도 있습니다. 답을 받는 신호를 막아버리는 겁니다. 국립전파연구원에 따르면 방해 전파로 ‘의심스러운 전파’를 죽이는 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엉뚱한 전파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고사장에 전문가와 장비를 투입하는 일도 어렵습니다. 아예 고사장 주변 전파를 모두 차단해 버리는 방식도 가능하답니다. 이 경우 난리가 날 수도 있습니다. 휴대전화 불통은 물론이고 병원이나 군부대까지 마비되니까요.

‘커닝’이 시험방식을 바꿀까

교육 당국이 발 벗고 하이테크 커닝 방지대책을 찾는 것도 어색합니다. 현실화되지 않은 위험 때문에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는 게 한가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일단은 휴대금지 물품을 강화하는 등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수험생에게 일일이 금속탐지기를 들이댄 뒤 고사장에 입장시키는 조치는 당장이라도 가능하지만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는 반발을 무시하긴 어렵습니다.

이런 면만 감안하면 대규모 커닝 사태가 예고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직적이고 대규모의 커닝이 실현되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장비에 능통한 기술자, 밖에서 문제를 풀어줄 사람은 필수입니다. 브로커가 사람을 모아도 ‘신뢰’는 걸림돌입니다. 이런 커닝은 인생을 건 도박입니다. 100%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감행할 수 있습니다. 꼬투리를 잡혀 두고두고 협박당할 수 있고, 나중에 일부 인원이 적발돼 쇠고랑 차는 걱정으로 밤잠을 설칠 수도 있겠죠. 전문가들은 적절한 ‘블러핑 전략’이 현실적 해법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부정행위를 적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술과 장비를 보유한 상태에서 “걸리면 처벌이 무겁다”는 엄포를 놓아 사전에 차단하라는 겁니다.

또 장기적으로 서술형이 미래 시험의 대세가 될 것으로 내다봅니다. 서술형 시험을 커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기존 선다형은 채점자에게 편리한 방식입니다. 이것을 서술형으로 바꾸면 교육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이테크 커닝’이 주입 위주의 우리 교육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