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작업실 窓·창밖 풍경을 통해 들여다본 작가 50인

입력 2016-01-07 19:47

작가는 엉덩이의 힘으로 글을 쓴다. 그만큼 자기만의 방에 갇혀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 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창은 외부와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을 최소한으로 실현시켜주는 도구다. 동시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멀리 하는 경계의 대상이기도 할 것이다.

이탈리아 태생의 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테오 페리콜리는 작가의 실제 창밖 풍경과 그들마다 창이 갖는 의미가 뭔지 궁금했다. 터키의 오르한 파묵에서, 남아공의 네이딘 고디머, 일본의 무라카미 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저명 작가 50명에게 글을 부탁했다. 모아진 글들은 프랑스 문학잡지 ‘파리 리뷰’에 2010∼2014년 연재됐다. 매 글마다 자신이 그린 작가들의 창밖풍경을 함께 실었다. 가능한 곳은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찾아가 창밖 풍경을 보고 그렸다. 그렇지 않은 곳은 사진 등을 참고했다.

작가들이 쓴 글은 짧으면서도 삶의 편린, 인생철학, 작품 세계 등을 엿보게 해 매력적이다. 마치 그 창을 통해 우리가 작업실을 거꾸로 훔쳐보는 재미를 준다.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 작업실 창밖. 오토만 왕조의 본거지였던 토프카피궁전, 하기아소피아 대성당, 푸른 모스크 등이 바다를 배경으로 장관을 연출한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지역을 배경으로 삼는 역사소설 ‘내 이름은 빨강’을 썼다”는 작가에게 “이다지도 멋진 풍경이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많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아니오. 나의 일부는 언제나 경관과 얽혀 있으니.”

이집트 카이로의 치과의사 출신 작가 알라 알와스와니의 작업실 창밖으로는 빨래 줄에 걸린 실내복이 보인다. “가난은 비참하지만 그에 맞서다보면 고귀함이 배어나온다. 그렇게 가난에 맞서는 자세를 나는 존경한다.” 그의 책을 읽지 않아도 작품 세계가 짐작이 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는 의외의 풍경을 즐긴다. 그는 종종 신주쿠의 고층 호텔에 머물며 글을 쓴다. 창밖으로 마천루가 올라가는 걸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고. “그걸 보고 완공 전에 세상을 떠나 결과를 볼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죽으면 누릴 광경이 없어진다는 뻔한 말의 시각적 이미지 같다.”

이처럼 많은 작가들이 창밖 풍경을 적극적으로 껴안고 살고 있는 것과 달리 노벨문학상을 받은 남아공의 네이딘 고디머는 일부러 창을 멀리한다. 그는 책상을 창과 떨어진 곳에 두고 빈 벽과 마주한다. “작가에게 경치 좋은 방이 필요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그는 오히려 작가가 불어넣는 분위기, 즉 자신만의 경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창의 의미에서 어떤 공통점을 추출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글과 그림이 함께하는 기획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용재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