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에 놀러가야 하니 빨리 (취재를) 끝내주세요.”
재촉하는 원기(10)는 또래 아이들처럼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빠 홍성원(39·서울 서강교회 부교역자) 목사가 웃으며 제지하자 토라진 얼굴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이 아이는 남들보다 여덟 배 빠른 시간 속에 산다. 원기는 소아조로증 환자다.
4일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홍 목사 자택에서 원기 가족을 만났다. 조로증은 제1염색체의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선천적 질환이다. 인지발달 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어린나이에 노인과 유사한 신체변화가 나타난다. 동맥경화로 인해 고혈압과 협심증, 뇌경색 등이 발병할 위험이 있다. 평균 수명 13∼14세. 수백만 명 중 한 명이 걸리는 희귀질환이다.
홍 목사 부부는 원기가 5살 때 병명을 알게 됐다. “아이가 매우 예민하고, 성장도 더딘 편이라 의문이 들었죠. 간호사이신 교회 집사님의 권유로 소아희귀질환 전문 의료진에게 검사를 받았어요. 결과를 듣고 주저 않았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거든요.”
홍 목사는 당시 상황이 떠오르는 듯 한숨을 쉬었다. 조로증 초기인 유아기에는 정상적으로 성장이 이뤄지다 늦어도 24개월쯤부터는 점차 심각한 성장 지연을 보인다.
원기의 키는 1m 남짓, 몸무게는 13㎏, 신체나이는 80세다. 나이가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듯 현재 원기를 치료할 방법은 없다. 국내 여건은 특히 열악하다. 조로증 전문 연구·치료 기관을 찾기 어렵다. 홍 목사 부부는 수소문 끝에 미국 보스턴의 조로증 연구센터와 연락이 닿았고, 2014년엔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임상실험용 약을 받아왔다. 하지만 부작용이 너무 심했다. 약을 먹는 동안 원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속을 게워냈다. 현재는 투약을 중단한 상태다.
의학적 통계에 따르면 원기의 수명은 3∼4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홍 목사 부부와 원기는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이기에 누구보다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원기에게 허락한 삶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최대한 즐겁고 기쁘게, 가치 있게 아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홍 목사는 서강교회(송영태 목사) 교인과 고아원 등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원기도 동행한다. “원기는 ‘착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다’고 자주 이야기해요. 이웃을 섬기는 데 직접 참여하게 하는 게 그 소원을 들어주는 방법이라 생각했죠.”
엄마 이주은(37·여) 사모는 수면장애가 있는 아기들을 위한 잠옷과 인형 등을 만들고 있다. 원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다. “몸이 아프다보니 엄마 아빠와 떨어지면 유독 불안해하며 잠을 못 이뤘어요. 누구보다 휴식이 필요한 아이라 대책이 필요했죠.”
이 사모는 부모를 형상화한 인형과 잠옷을 만들었고, 이는 원기의 숙면에 효과가 있었다. 지난해부터 청년창업센터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인형과 잠옷을 제작하고 있다. 판매도 하지만 고아원 등엔 무료로 지원한다. 이 사모는 “원기로부터 시작된 아이디어였으니 이 일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웃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홍 목사 부부와 원기는 오는 17일에도 인형과 잠옷을 들고 고아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남양주=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소아조로증 아들 둔 홍성원 목사 “아들과의 시간, 주님 주신 대로 기쁘게 선하게”
입력 2016-01-06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