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서울YMCA 변질 지적한 ‘오리 선생’ 계시다면… 위기의 서울Y 그리운 전택부

입력 2016-01-06 20:16
2008년 6월 자택에서 보행기에 몸을 지탱한 채 서 있는 전택부 선생. 뒤로 ‘낙도안덕(樂道安德)’이라고 적힌 액자가 보인다. 국민일보DB

오리 전택부(1915∼2008) 선생은 193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해산된 서울YMCA(서울Y)를 1958년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이다. 20년 공백을 극복하고 우리나라 대표 시민사회운동 단체로 키우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영원한 Y맨’ 전 선생의 집엔 ‘낙도안덕(樂道安德)’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도와 덕을 즐기며 편안하게 살다’라는 뜻이다. 현재 논란이 되는 불법투자 문제로 서울Y의 ‘도와 덕 상실’이 본격화된 건 2008년이다. 공교롭게도 전 선생이 세상을 떠난 바로 그 해다. 2016년 오늘, 서울Y는 집행부의 투명성 문제로 여전히 분쟁(국민일보 2015년 12월 30일자 30면 보도)에 휩싸여 있다.

◇도(道)의 상실=“서울Y는 방해꾼들 때문에 제구실을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 선생은 2003년 발간한 그의 책 ‘Y새끼다리들이여’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그때 이미 서울Y가 변질돼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새끼다리들이여’는 간사들을 풍자한 말이다.

“파괴된 서울Y의 회관이 재건되면서부터 일부 교권주의자들의 침공이 시작됐습니다. 서울Y를 살리기 위한 모금운동을 펼칠 때는 뒤에서 비웃기만 하던 이들이 몰려들어와 사사건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죠.”

전 선생은 당시 서울Y를 파국으로 이끈 핵심인물로 표용은(83) 명예이사장을 지목했다. 표 명예이사장은 1974년 서울Y 이사로 선임된 이후 41년간 이사를 지내고 18년간 이사장을 역임했다. ‘1인 집권 체제’가 장기간 이어지는 동안 서울Y에선 당연히 지켜져야 할 도리(道)가 무너졌다. 표 명예이사장의 지인들이 요직에 앉았고, 이들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예산집행은 ‘깜깜이’로 이뤄졌다. 현재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불법투자’ 문제 역시 이 연장선상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Y가 기본재산을 팔아 얻은 돈을 주무관청에 신고하는 절차를 무시해 발생한 것이다. 서울Y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불법 건물 증축, 외유성 해외 출장 등 기독교단체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덕(德)의 상실=전 선생은 일본 도쿄에서 신학을 공부하다 사회운동에 매진했다. 그의 책에는 서울Y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내용이 담겨있다.

“서로 갈라진 Y는 없습니다. 서울Y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패당들로 인해 곤욕을 치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울Y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명예와 이익추구를 위해 패당을 짓고 있습니다.”

전 선생은 생전에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타인에 대한 섬김(德)’을 특히 강조했다. 이덕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은 “전 선생은 서울Y가 초기 기독교정신을 잃고 사업하는 단체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 많이 안타까워하셨다”고 회상했다.

전 선생은 변해가는 서울Y를 보며 자신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가 2007년 6월 ‘월간 신앙계’에 쓴 글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서울Y가 흔들리는 것은 서울Y의 정신이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서울Y의 정신보다 회관을 먼저 재건한 탓이다. 종로 네거리에 큰 건물이 우뚝 서게 되니까 모두가 탐을 냈다. 그래서 나는 회관을 재건한 것을 후회한다.”

서울Y가 위태롭다. 고 전택부 선생과 현재 서울Y 이사진의 상황 인식은 다르다. 지난달 말 서울Y 이사진이 마지막으로 던진 카드는 서울Y의 문제를 들춰낸 심규성 감사를 제명하는 것이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