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차 핵실험은 7500만 한민족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 도발이다. 한반도 평화 구축과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통일을 도모하는 남한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배신행위다. 미국 중국 등 주변국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전 통보조차 없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4년차를 맞아 올해 중 교착된 남북관계에 활로를 개척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핵 개발 의지를 언급하지 않아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통일부가 즉각 호응하는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일말의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초대형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물거품이 돼버렸다.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북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으나 이마저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북이 ‘수소탄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소탄이 아니라 그 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 실험을 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핵실험은 우리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앞선 세 차례 핵실험보다 위력이 센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국제사회가 여전히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보유국 지위에 접근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북의 핵 보유는 미국과 일본 등에도 위협이 되겠지만 그보다는 이마를 맞대고 사는 남한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이 실제로 사용 가능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첨예하게 대립 중인 남북한 군사력에 심각한 불균형을 가져오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국방예산을 투입해 재래식 무기를 첨단화한다 해도 핵무기엔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다지만 일단 유사시에는 북핵의 볼모가 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북이 실질적인 핵 보유를 인정받아 미국과 핵 감축 협상에 나설 경우 우리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존재감을 상실할 수도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런 끔찍한 일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북의 핵실험에 정부는 비교적 기민하게 대응했다. 외교부와 국방부, 통일부가 빠른 속도로 조치를 취하는 한편,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도 신속하게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대내외 대응 전략을 모색했다. 당장은 북의 추가적인 도발을 제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북이 핵실험에 이어 휴전선 일대에서 총격이라도 가해 온다면 국민들이 불안에 휩싸일 수 있다. 국방부가 군의 경계태세를 격상하고 비상 대응체제를 구축한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 당분간 미국과의 군사적 공조에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통일부는 개성공단을 비롯한 북한 체류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철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어차피 우리 손을 벗어난 국제적 해결 과제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외교력을 발휘해 최선의 사후 대책을 이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북은 이미 유엔으로부터 많은 제재를 받고 있다. 핵실험 때마다 부과된 제1718호, 제1874호, 제2094호 결의가 그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양자 제재 등 다양한 종류의 제재를 받고 있다. 북의 핵실험은 안보리 결의를 명백하게 위반했기 때문에 반드시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제재를 받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유엔 안보리의 환경이 우리한테 무조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강대국들이 이구동성으로 엄정한 조치를 주장하겠지만 미국과 러시아는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어서 대북 추가 제재에 러시아가 적극 협조할지 미지수다. 중국도 북의 핵실험에 매우 비판적이지만 남중국해 문제로 불편한 관계인 미국에 구체적인 사안에까지 협력할지는 불투명하다. 정부의 외교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협력을 얻어내는 데는 타 강대국들의 도움을 받더라도 중국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시진핑 국가주석과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수교 이래 최선의 한·중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중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유엔이 우리 정부 요청에 따라 6일 오전(현지시간) 안보리 회의를 개최한 것은 다행이다. 대북 제재는 실효성이 가장 중요하다. 북은 안보리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재 대상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 또 다시 핵 도발을 자행한 김정은이 크게 후회하도록 만들지 못하면 제5, 제6차 핵실험도 막기 어렵다. 국제 제재와는 별도로 정부도 기존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당당하다는 듯 핵 도발을 자행하는 북에 대해 계속 유화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북의 도발에 대처하는데 국론분열은 절대 금물이다. 정부와 정치권,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 대처해야 한다. 집권여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신당을 준비 중인 안철수 의원까지 한목소리로 북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놓은 것은 다행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추진하자고 제안한 대북 규탄 국회 결의에 야당도 당연히 동참해야 할 것이다. 총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와 여야 정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안보 문제만큼은 정치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북의 도발을 제대로 제압할 수 있다.
[사설] 북의 核 도발, 관계개선 기대감 또 깨뜨렸다
입력 2016-01-06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