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밴드’ 올린 사진, 죽음 불렀다

입력 2016-01-06 21:14

무심코 초등학교 동창생 ‘밴드’에 올린 사진 한 장이 10개월 뒤 참혹한 살인극을 불렀다.

전기설비공인 정모(46)씨는 지난해 3월 초등 동창생인 김모(45·전기설비공)씨의 인천 남구 학익동 다세대주택에서 우연히 1개월 동안 함께 살게 됐다.

이 기간 김씨는 정씨가 팬티만 입고 자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어 같은 해 6월쯤 여자 동창생 5∼6명이 가입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밴드에 이 사진을 올렸다.

팬티만 입고 있는 정씨의 사진을 본 여자 동창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정씨에게 ‘행동 똑바로 하고 다녀라’는 문자를 날렸다. 여자 동창들은 김씨가 술에 취할 때마다 정씨를 나쁜 놈이라고 험담한다는 사실도 전했다. 하지만 반라 사진을 봤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정씨는 여자 동창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정씨는 1월 1일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새해를 맞아 남자 동창 4명이 1일 저녁 모교인 인천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친구들은 여자 동창들이 정씨의 나체 사진을 밴드를 통해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진 이야기를 처음 들은 정씨는 치욕스러웠지만 화를 참았다.

혼자 살고 있는 정씨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그는 다음날 오전 2시쯤 택시를 타고 10여분 거리에 있는 김씨 집을 찾아갔다.

정씨는 “네가 사진을 올렸느냐”며 김씨를 폭행했다. 이어 30여분 동안 싸움을 했지만 김씨는 끝까지 발뺌했다. 정씨는 “친구들에게 험담을 하고 여자 동창생 밴드에 사진을 올린 사실이 있지 않으냐”고 다그쳤지만 김씨는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정씨는 친구의 복부를 흉기로 찔렀다. 김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자 정씨는 담배를 한 대 피운 뒤 현장을 빠져나왔다.

정씨는 이후 경기도 지역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지난 5일 오후 9시쯤 학동지구대의 아는 경찰을 찾아가 자수 의사를 밝혔다. 정씨는 경찰에서 “인터넷을 검색하다 내가 살인 외에 방화 혐의까지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며 “살인 혐의는 인정하지만 방화는 인정할 수 없어 지인들에게 법적 자문을 구한 뒤 자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인천 남부경찰서는 6일 정씨에 대해 살인 및 방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