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온라인 서점 무료배송이 사라진다면

입력 2016-01-06 17:44

지난 연말의 일이다. 일기와 편지뭉치, 서류 따위를 넣어둔 큼직한 종이상자를 어쩌다 들출 일이 생겼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크리스마스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친구가 보낸 그 카드의 송신 날짜가 놀라웠다. 1991년 12월 19일. 그랬다. 25년 전만 해도 예쁜 카드에 손글씨로 써 새해인사를 주고받던 ‘종이 문화’ 속에 살았던 것이다.

추억 속의 카드는 연말이면 서점에 들러 연하장을 고르던 기억도 함께 불러냈다. 휴대폰이 없던 그 시절, 약속 장소로 애용했던 서점의 추억도 새록새록 살아났다. 하지만 친구를 기다리며 신간 소설을 읽던 즐거움은 아련한 추억이 됐다. 종이카드도, 동네서점도 ‘온라인 괴물’의 등장으로 멸종되다시피 했다.

보호해야 할 천연기념물 신세가 된 동네서점이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살아나고 있다니 반갑다. 서울 마포의 신생 동네서점 ‘북바이북’ 김진양 대표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책 판매량이 5배로 늘었다”고 했다.

도서정가제 시행 1년을 넘기며 정부는 보완책을 마련 중이다. 차제에 온라인 서점의 무료 배송에 대한 규제를 고민해볼 걸 제안한다. 온라인 서점은 1만원 미만의 책에 대해 2000원의 배송료를 책정하고 있지만 1만원 이상은 무료다. 책값은 거의 1만원이 넘다보니 사실상 배송료는 공짜인 셈이다.

도서정가제는 마일리지 적립 등 직간접적으로 책값을 할인할 수 있는 폭을 종전의 19%에서 15%로 제한한다. 무료 배송은 할인 제한 대상에서 예외다. 힘없기 그지없는 동네서점이 거대 괴물 온라인 서점과 싸우는 마당에, 온라인 서점에 2000원 추가 할인의 혜택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도 “지역서점이 (온라인 서점과의 대결에서) 가장 타격을 받는 부분이 무료 배송 제도”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소비자 저항이 커서 도서정가제 규제 조항에 넣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의외로 반대가 많았다. 동네 슈퍼도 일정 금액 이상을 사면 무료 배송해주는데, 온라인 서점만 규제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멸종위기의 동네서점 보호 차원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최소한 공정한 경쟁이 벌어질 수 있는 마당은 제공해줘야 한다. 소비자가 시간을 내서 동네서점을 찾아가지 않고 클릭 한 번으로 책을 주문했다면 그 편리함의 대가는 지불하게 해야 한다. 더불어 사는 방법에서 우리보다 앞선 프랑스가 배송료를 규제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2014년부터 ‘반아마존법’을 통해 책값의 5% 이하 범위 내에서 할인할 수 있지만 무료배송은 할 수 없도록 했다.

동네서점의 성공 사례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서울 홍대 인근 땡스북스는 직장인들이 퇴근길 포장마차 들르듯 찾는 곳이 됐다. 마포의 피노키오북스는 그림책 전문으로 자리를 잡아 동심이 그리운 어른들까지 단골로 확보하고 있다. 동네서점이 문화적 쉼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동네서점에서는 귀퉁이 얌전히 앉은 책도 책장을 넘기다 문장 한 줄에 반해 사게 되는 ‘발견의 기쁨’도 있다. 지적 다양성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다. 온라인 서점에선 메인 화면에 오른, 떠먹여준 책들에만 눈길을 주게 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누누이 외치는 일자리 창출의 틈새 전략이 될 수 있다. 퇴직 후 서점 하나 차릴까 하는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누구도 그런 꿈, 안 꾼다. 동네 상가마다 치킨 집, 커피전문점만 넘쳐난다. 서점을 내는 게 자연스러운 창업이 될 수 있는 현실을 만드는 건 정부 하기 나름이다. 박근혜정부의 문화 치적인 도서정가제가 과감한 보완책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손영옥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