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이노베이터] 디지털 혁명은 ‘협업’이었다

입력 2016-01-08 04:00 수정 2016-01-08 16:59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벨연구소의 존 바딘, 윌리엄 쇼클리, 월터 브래튼(왼쪽부터).
학교 컴퓨터실에서 찍은 중학생 시절의 빌 게이츠(오른쪽)와 폴 앨런.
구글을 창업하던 시기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오른쪽).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자신의 전기를 쓸 작가로 월터 아이작슨을 선택했다. 아이작슨은 ‘타임’ 편집장과 CNN 최고경영자를 지냈으며 벤저민 프랭클린, 키신저, 아인슈타인 등의 전기를 쓴 세계 최고의 전기 작가로 꼽힌다. 2011년 10월 잡스 사망 직후 아이작슨이 쓴 잡스의 전기 ‘스티브 잡스’는 전 세계에 동시 출간됐고 국내에서 70만부 이상이 팔렸다.

아이작슨의 신작 ‘이노베이터’는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과학혁명을 얘기하기 위해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전기는 비범한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테크놀로지 혁명이 이루어진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새롭게 주목한 것은 팀, 즉 협업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다락방이나 차고에서 발명가 한 명이 홀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인물을 잡지 표지에 싣거나 에디슨, 벨, 모르스와 함께 만신전에 모시기도 어렵다. 사실 디지털 시대의 혁신은 대부분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이노베이터’는 디지털 혁명의 역사를 수십 명의 혁신가들의 이야기로 구성한다. 잡스나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들도 있지만 생소한 이름들도 적지 않다. 아이작슨은 디지털 혁명이 전개된 과정을 컴퓨터, 프로그래밍, 트랜지스터, 마이크로칩, 인터넷,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 혁신 기술 중심으로 구분한 뒤 각각의 기술이 태어나던 순간에 혁신가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떻게 일했는지 그들의 일대기와 함께 보여준다.

아이작슨은 혁신의 순간들에 작용하는 복잡성과 연속성, 우연성 등을 명료하게 설명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혁신이 가능했는가?’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아이디어는 어떤 과정을 통해 현실로 바뀌었는가? 경쟁하는 기술들 가운데 어떤 기술이 살아남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다른 사람들은 실패했는가?

그가 찾아낸 답은 협업이다. 예컨대, ‘누가 인터넷 발명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이작슨은 “인터넷은 부분적으로는 정부에 의해, 부분적으로는 사기업에 의해 구축되었지만, 대부분은 동료 관계로 일하며 자유롭게 창조적 아이디어를 공유하던, 느슨하게 결합된 무리의 창조물이었다”고 대답한다.

아이작슨은 “혁신은 외톨이의 일이 아니다”거나 “혁신은 고독한 천재의 머리에서 전구가 반짝 켜지는 순간보다는 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하면서, 개인사 중심으로 기술되는 컴퓨터의 역사를 팀들의 역사로 다시 쓰고자 한다. 또 창조성의 비밀을 개인의 천재성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비판하면서 팀의 협업에 주목한다. 1947년 트랜지스터의 등장과 관련해 역사는 세 명의 과학자를 발명자로 기록하고 있지만, 아이작슨은 그들이 소속됐던 벨 연구소의 팀워크에 보다 눈길을 준다. 양자역학 물리학자들, 재료과학자들, 화학자들, 제조 전문가등이 한데 모였기 때문에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작슨이 컴퓨터의 역사를 짚어나가면서 탐구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디지털 혁신가들의 특질이다. 그는 기술의 혁신 방향을 추적하면서 혁신가들이 공유하는 어떤 특질을 가늠한다. “일반 개인은 손댈 수 없는 산업용, 군용의 거대한 물건”이었던 컴퓨터가 어떻게 지극히 개인화된 물건으로 진화했는가? 블로깅이나 위키피디아, 검색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혁신이 매번 소통과 네트워크의 도구를 만드는 데로 이어지는 이유는 뭔가?

혁신을 이끈 것은 테크놀로지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어떤 문화나 믿음들이 작용했다. “컴퓨터가 대량 고속 처리에만 사용될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재미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개인용 컴퓨터로 이어졌고, “권력이 집중되기보다는 분산되어야 하고 모든 권위적인 강권은 우회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인터넷은 건설되었다. 1993년 대학 신입생이었던 저스틴 홀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장난기 짙은 세계관과 10대다운 집념을 가진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웹 사이트를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최초의 블로깅이 되었고, “사람들이 조금 덜 외롭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인터넷의 정수가 되었다.

아이작슨은 “디지털 시대의 가장 진정한 창조성은 예술과 과학을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는 데 감명을 받았다”면서 “그들은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테크놀로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잡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혁신은 아름다움과 공학, 인문학과 테크놀로지, 시와 프로세서를 연결지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