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환경 규제를 피하기 위해 디젤차량의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독일 자동차업체 폭스바겐에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소송 결과에 따라 폭스바겐은 최대 100조원대의 벌금을 물 수도 있어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4일(현지시간) 미 환경보호청(EPA)을 대신해 청정공기법 위반 혐의로 폭스바겐을 상대로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연방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에서 판매한 약 60만대의 디젤차량에 불법 소프트웨어를 장착해 결과적으로 과다한 배출가스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미 법무부는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통제체계를 함부로 변경하고 관련규칙 위반 보고를 소홀히 하는 등 청정공기 관련법 4건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폭스바겐이 법무부가 소장에서 청구한 대로 완전히 패소한다면 물게 될 벌금은 이론적으로 최대 900억 달러(약 107조원)를 넘을 수도 있다. 법무부는 폭스바겐에 부과할 벌금을 자동차 한 대(총 60만대)당 3만7500달러(약 4450만원)에다 법규위반 건수 4개를 곱해 산출했다. 앞서 지난해 9월 EPA는 폭스바겐이 물게 될 벌금이 최대 180억 달러(약 21조35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대부분의 미국 주요 언론은 폭스바겐이 내야 할 최대 벌금 액수를 180억 달러로 추정했다.
법무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법무부는 폭스바겐이 미국인과 당국을 상대로 사기를 저지른 혐의 여부도 조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회사를 상대로 형사적 조처를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미국 정부의 소송은 피해를 입은 미국 소비자들이 제기했거나 준비 중인 집단소송과 별개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3000명 이상의 소비자가 폭스바겐을 상대로 매매계약 취소 및 매매대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폭스바겐은 한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리콜에도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법률 전문가들은 EPA의 리콜 발표 이후 폭스바겐이 일찌감치 조작 사실을 시인한 만큼 위반 여부에 대한 다툼 없이 정부가 승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벌금 규모는 소송 과정에서 조정될 수도 있다.
벌금 규모가 다소 조정되더라도 폭스바겐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폭스바겐은 사태 이후 손실에 대비해 65억 유로(약 8조4000억원)의 충당금을 마련하고 투자 규모도 축소했으나 이 돈으로는 미국 정부의 벌금만을 감당하기도 역부족일 수 있다. 다른 나라도 자국의 환경 관련법에 의거해 폭스바겐에 벌금이나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기업 범죄에 엄격한 미국 정부의 철퇴를 맞고 위상이 크게 추락한 글로벌 기업은 폭스바겐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 자동차업체 도요타는 2009년 미국에서 급발진 관련 리콜로 당시 업계 최대 규모인 12억 달러(약 1조4000억원)의 벌금을 냈고 리콜과 소비자 소송으로도 각각 24억 달러와 16억 달러를 지출해야 했다. 영국의 석유기업 BP는 2010년 4월 멕시코만 기름유출 사고의 책임으로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200억 달러(약 23조8000억원)를 배상해야 했다. 벌금액수가 결정된 것은 지난해 10월이지만 2010년 사고 이후 이미 BP는 2010년 2분기 18년 만에 첫 적자를 내며, 업계 순위도 2위에서 4위로 밀려났다.
정부는 폭스바겐으로부터 리콜 계획서를 받아 철저히 검증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26일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을 확인하고 과징금 141억원을 물렸다. 정부 차원의 민사소송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미국 법무부의 민사소송과 관련해 홍동곤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은 “국내에선 정부 차원의 소송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배병우 선임기자, 이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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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법무부 “폭스바겐, 107조원 물어내라”… ‘배출가스 조작’ 민사소송
입력 2016-01-05 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