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5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 고용의 물꼬를 트겠다며 청년희망펀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직접 1호 가입자가 돼 일시금 2000만원을 기부했고, 매달 월급에서 20%를 펀드에 넣고 있다.
여러 대기업과 많은 시민이 동참한 결과 청년희망펀드 모금액은 지난해 말 1208억원이 됐다. 이 돈을 운용하는 청년희망재단은 지난달 ‘2016년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8일부터 본격적인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그런데 벌써 우려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청년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각종 사업이 정부가 이미 진행 중인 정책과 상당 부분 중복된다는 것이다. 차별성이 없어 투입 자금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부정적 전망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뭘 원하는지 고민하기에 앞서 돈부터 모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쌓인 막대한 돈. 과연 ‘흙수저’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탕, 삼탕 혹은 비효율=지난해 11월 5일 문을 연 청년희망재단은 불과 한 달 만에 올해 사업계획을 세웠다. 199억8000만원을 투입해 15∼34세 청년 12만5000여명에게 취업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6300개 청년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했다.
재단이 공개한 프로그램은 ‘일자리 매칭’과 ‘인재 육성’ 사업으로 나뉜다. 핵심은 ‘강소·중견 온리원 기업 채용 박람회’다. 매주 내실 있는 강소·중견기업 1곳을 선정해 구직자에게 면접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8일 한 내비게이션 업체를 초청해 첫 취업 박람회를 열기로 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에 청년을 파견하거나 미국 실리콘밸리 IT 기업에 취업하도록 관련 교육을 지원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연간 2조원을 투자하고 있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 겹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보부상 양성 사업’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해외취업 사업인 ‘K-무브’와 취지, 방식이 비슷하다. 차이점은 해외취업 연수기간뿐이다. K-무브 스쿨은 3∼12개월, 글로벌 보부상 양성 사업은 12∼18개월이다.
‘멘토링 서비스’는 정부의 ‘창업 맞춤형 사업화 지원’, ‘빅데이터 전문가 양성’은 고용노동부의 ‘청년취업 아카데미’와 중복된다. ‘청년관광통역안내사 양성’ 과정에 참여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미리 따야 한다.
쓰는 돈에 비해 비효율적이라는 우려도 있다. 대학의 특정 학과를 졸업해야 신청할 수 있는 인재 육성 사업의 경우 290명을 교육하는 데 96억원을 지원한다. 반면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일자리 매칭 사업은 12만4500명에게 33억7000만원을 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놓치고 있는 고졸자나 학교 밖 청년 취업 지원 등을 공략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텐데, 방향을 잘못 잡은 듯하다”고 말했다. 신윤정 서울시 청년허브 기획실장은 “서울시가 준비 중인 청년수당이 비효율과 낭비라는 비판이 거센데 투입 예산과 효과를 비교해보면 청년희망재단의 사업이 더 비효율적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기업 돈 걷어 기업 입사 지망생에게 주는 꼴”=전문가들은 최악의 경우 생색만 내다 공중분해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내놓았다. 정권이 바뀌거나 사업이 조기에 끝나면 펀드로 모인 돈은 국고로 귀속될 예정이다. 청년들이 가려워하는 부분, 절실하게 원하는 것부터 찾아내야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연구위원은 “예를 들면 지방에서 서울의 기업까지 면접 보러 오려면 차비가 든다. 이런 비용을 지원해주는 게 밀착형 취업 지원이다. 또 너무 복잡한 정부 일자리 정책을 청년들에게 쉽게 소개하고 홍보하는 방안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정장을 구입하거나 빌리는 데 드는 돈을 줄이도록 재단에서 ‘편한 복장으로 면접 보기’ 캠페인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현행 방식은 기업에서 돈을 걷어 기업 취업 지망생에게 주는 꼴밖에 안 된다. 기존의 기업 인사 시스템에 맞춘 사업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답이 없는 상태에서 돈부터 걷다보니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며 “눈치 보지 말고 재단만의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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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06 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