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년 시절부터 외모가 빼어난 편은 아니었다. 체구는 중간쯤 되게 평범했지만 그에 비해 큰 두상을 하고 있었던 데다 이마가 앞으로 툭 튀어나오고 뒤통수는 그 아래쪽에서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해서 ‘앞뒤 짱구’라는 놀림을 많이 받았다. 주인공이 ‘짱구’라는 이름을 가진 인기 만화를 방송에서 가족과 함께 보면서 남몰래 혼자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또한 뭉툭한 코와 두툼한 입술에 어울리지 않게 눈이 너무 작아서 주변에서 ‘눈을 뜨고 다니라’는 말을 농담으로 하곤 했다. 막상 그 말을 듣는 나는 재미있기는커녕 몹시 싫었다. 머리카락은 뜨거운 연탄불 위의 오징어처럼 앞뒤로 꼬이고 비틀어지는 곱슬머리로 확정되었고 한동안 곧게 뻗은 생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지금은 방송이나 영화에서 맹활약하는 배우, 예능인 중에서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수려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보다는 남다른 자기 나름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나와 외모상으로 견주어 별반 ‘수준 차이’가 없는 사람들도 간혹 보이는데 내가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더라면 생김새만으로 한몫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남들이 뭐라 하건 말건.
외국 브랜드의 안경 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도 나처럼 눈이 작고 웃을 때는 가늘어지면서 눈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를 상황을 연출한다. 스스로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고 주장하지만 남들이 쉽게 믿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남다른 유머감각을 가진 그가 불쑥 나온 배를 흔들며 가벼운 농담이라도 하면 좌중은 웃음으로 초토화된다. 그는 기억력이 비상하며 남다르게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가 눈물로 옷깃을 적신 채 영화관을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내가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눈이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돼 가는 것을 면전에서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사업이 어렵고 상황이 심각할 때도 있겠지만 언제나 작은 눈이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마음껏 웃고 웃기는 그의 얼굴이 참 좋다.
얼마 전 그는 사업 파트너인 외국인과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그 자리에서 의외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외국인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이 있어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볼 기회가 많은데 거리에서 본 수많은 여성들이 자매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사업상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성들을 볼 기회가 많은 이 남자는 한국처럼 여성들의 외모가 비슷한 경우는 없다고, 충격적이라는 표현까지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한국에서 성행하는 성형수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누구에게도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외모를 수술로 뜯어고치고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한다고 속마음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형상의 미적 부조화, 보기 싫은 것을 부분적인 성형으로 교정하고 거기에 더해 자존감까지 얻는다면야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그 결과로 한 공장에서 생산된 로봇처럼 서로 닮거나 그때그때 인기 있는 유명인 누군가와 비슷한 외모가 되는 것이라면 큰돈 들여 자신을 잃은 꼴이 되지 않을까.
친구가 쌍꺼풀 없는 작은 눈과 뭉툭한 코를 가진 딸의 사진을 사업 파트너인 외국인에게 보여주었더니 그는 두 손을 벌리며 “뷰티풀”을 연발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고 개성적이면서 은은하게 한국적인 특징이 드러나는 것이 정말 놀랍고 아름답다고. 그러나 친구의 딸은 자기 친구들처럼 쌍꺼풀이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나는 내 친구의 딸이 태어난 그대로의 외모로 살아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내가 내 얼굴에 손을 대지 않았듯이.
최석운(화가)
[청사초롱-최석운] 나의 얼굴
입력 2016-01-05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