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과 유치원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비용 부담 주체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도교육청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우려됐던 ‘보육 대란’이 현실화됐다.
경기도교육청은 4일 유치원 보육비 예산이 없어 교육지원청에 교부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도교육청이 유치원 보육비 예산을 분기별로 각 교육지원청에 배정하면 교육지원청이 매월 4일 유치원으로 보육비를 지급해 왔다.
도교육청은 올해 예산안에 유치원분 4924억원(급식비 포함 5100억원)을 편성했으나 도의회 교육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도교육청이 유치원에 교부하는 누리과정 예산은 사립유치원의 경우 원생 1인당 육아학비 22만원과 방과후과정비 7만원 등 29만원, 공립유치원은 육아학비 6만원과 방과후과정비 5만원 등 11만원이다. 사립 유치원은 이를 받아 인건비와 운영비 등으로 사용해왔다.
이날 유치원에 보육비가 교부되지 않음에 따라 원생 19만8000여명이 이용하는 경기도 유치원은 보육혼란에 빠지게 됐다.
유치원들은 학부모들에게 교육비 등의 납부를 요구하거나 자체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됐다. 인건비와 공과금 지급일이 25일 전후여서 당장은 여유가 있지만 미지급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운영난에 빠지는 유치원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수원의 한 사립유치원 관계자는 “누리과정 예산이 지원되지 않으면 당장 인건비와 교재비 등을 충당하지 못해 유치원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1∼2월 이내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학부모들이 월 10여만원만 내던 유치원비를 33만3000원 모두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집단 퇴원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부모들도 보육비 부담을 떠안게 될 상황에 분통을 터뜨렸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는 강모(39·여·수원시 팔달구)는 “지금도 살림살이가 빠듯한데 보육비 지원이 끊기면 어쩌느냐”며 “학부모들의 입장을 생각해 하루 빨리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과 도의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도의원들은 누리과정 예산은 대통령 공약사항인 만큼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며 자체 예산 편성에 반대하고 있는 상태다. 이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경기도는 지난 연말 도의회에서 올해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해 ‘준예산 사태’를 맞았다.
경기도가 이날 준예산 편성 규모를 18조3080억원으로 최종 확정해 도의회에 제출했지만 도교육청은 유치원분 누리과정비는 집행하지 않기로 했다. 도의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삭감된 항목들은 의회 의결 전까지는 집행하지 않을 방침이다.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은 5일 오전 11시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준예산 사태와 보육 대란 관련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안산의 한 유치원 원장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해 연말 15일이 넘게 여야 가리지 않고 도의원들을 찾아 부탁했지만 핑퐁게임하듯 미루기만 하더니 이런 사태가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과 광주·전남도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이 시·도의회에서 전액 삭감돼 보육혼란은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유치원뿐 아니라 어린이집 누리과정도 혼란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서울, 경기, 세종, 강원, 전북, 광주, 전남 등 7곳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0원’이다.
어린이집은 학부모가 매월 15일쯤 신용카드로 보육비를 결제하면 다음 달 20일 이후 카드사에 보육비가 지급되는 방식이다. 이때까지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자녀 1명당 매월 20여만원에 달하는 보육·교육비는 학부모들이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교육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시·도교육청에 이달 중으로 조기 추경을 편성토록 해 1월분 보육비가 미지급되는 사태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시·도교육청들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며 “서울, 광주, 전남은 마무리했으며 5일 경기, 세종, 강원, 전북 예산을 살펴본 뒤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감들을 설득하겠지만 만약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여력이 없는 걸로 판명난다면 예산 당국과 협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원=강희청 기자, 이도경 기자 kanghc@kmib.co.kr
경기도 보육대란 현실로… 유치원·학부모 “어떡하나”
입력 2016-01-05 0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