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25)씨는 4년째 서울 관악구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중국집에서 배달 일을 시작했다. 그 뒤로 중국집 몇 곳과 치킨집 몇 곳을 거쳤다. 그러다 2014년 2월부터 ‘배달대행업체’로 소속을 옮겼다.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배달앱(애플리케이션)’이 우후죽순 생겨난 뒤였다. 이 앱은 업계 구조를 바꿔버렸다. 음식 주문을 대신 받아주는 배달앱이 나오자 곧 배달을 대신해주는 전문 배달업체가 등장했다. 배달앱 수수료가 부담스러웠던 음식점들은 배달원을 직접 고용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앞 다퉈 배달대행업체와 계약했다. 주문에 이어 배달까지 ‘아웃소싱’된 것이다.
이씨는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면 수입이 더 좋다”는 주위 조언을 듣고 자리를 옮겼다. 배달 건당 3500원씩 지급하는 방식이어서 ‘부지런히 하면 일한 만큼 벌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소속을 옮기며 이씨는 개인사업자가 됐다. 배달하는 음식도 중국 음식이나 치킨 같은 단일품목에서 배달앱이 연결해주는 한식, 중식, 일식, 분식 등 다양해졌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월 180만원쯤 벌려면 매일 8시간 넘게 일하며 하루 40∼50건의 ‘콜’을 소화해야 했다. 이씨는 월요일을 제외한 1주일 내내 출근해 50시간 넘게 일한다. 수입은 20만원 정도 늘었지만 하루에 1시간 이상을 더 일하고 있다.
배달 과정에 물건이 파손될 경우 책임지겠다는 ‘서약서’도 작성했다. 중국집 알바일 때는 사장이 책임을 지고 부담을 나눴지만, 이제는 고스란히 이씨의 몫이 됐다.
배달앱이 바꾼 ‘배달 알바’의 삶
스마트폰에서 몇 번의 터치로 음식을 주문하는 배달앱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각종 배달앱 다운로드는 총 4000만건에 육박한다. 월 500만명이 배달앱을 이용해 음식을 주문한다. 시장 규모는 2014년 1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2조원대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구조도 바뀌었다. 전화 주문 체제에선 음식점이 배달산업의 전 과정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배달앱→가맹음식점→배달대행업체’로 ‘주문→조리→배달’의 역할이 나뉘었다. ‘배달 알바’들은 자연히 음식점에서 배달대행업체로 ‘대이동’을 했다.
이렇게 달라진 사업구조가 배달 알바들의 근로조건을 더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지난달 29일 ‘배달앱 아르바이트,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신종 배달업체에 속한 청소년과 청년들이 고용과 노동조건에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배달대행업체 배달원들이 기존의 음식점 근로계약과 달리 개인사업자 등 위장된 자영업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점을 문제의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해 10월 서울행정법원은 배달앱을 통한 배달 알바를 하다 사고를 당한 고등학생에 대해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배달대행업체 소속 배달원들이 음식점의 배달 요청을 골라서 수락할 수 있었고, 출퇴근이나 결근에 대한 제재가 없었던 점을 들어 “임금을 매개로 한 종속적 근로관계가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배달원 450명에게 물어보니
김 연구위원 연구팀이 지난해 11∼12월 서울지역 배달 알바 450명(음식점 소속 배달원 250명, 대행업체 소속 배달원 200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교부받지 못한 비율이 배달대행업체 배달원의 경우 63.3%나 됐다. 음식점 배달원은 36.7%만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 못했다.
대행업체 배달원은 6%가 2015년 최저임금인 5580원을 받지 못해 음식점 배달원(3.5%)의 약 2배였다. 배달 물품을 분실하거나 손상을 입혔을 때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한 경우도 79%나 됐다.
4대 보험 가입 문제에서도 대행업체 배달원이 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고용보험 8.5%(음식점 16.0%), 산재보험 32.0%(음식점 33.0%), 국민연금 3.5%(음식점 8.8%), 건강보험 2.5%(음식점 9.2%) 등 모든 부문에서 음식점 배달원보다 낮은 비율을 보였다.
김 연구위원은 “배달원들은 평균 1주일에 48.3시간을 일한다. 현 상황을 방치할 경우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청소년·청년은 근로기준법 등 기본적인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적절한 보호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기획] 주문 편리해진 ‘배달앱’… 더 고달파진 ‘배달 알바’
입력 2016-01-05 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