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신의 관계, 죄와 책임 같은 묵직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 방식은 위트가 넘친다. 포르투갈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사진)는 2010년 87세를 일기로 타계하기 1년 전 이 소설을 썼다. 생의 마지막 순간, 거장을 사로잡은 주제가 인류 최초의 악인 ‘카인’이라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전작인 ‘예수복음’이 신약의 재해석이라면 이번 소설 ‘카인’(표지)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구약을 재해석한 것이다. 카인은 구약성서 창세기 4장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하나님에 의해 이마에 낙인이 찍힌 이후 성경에서는 더 이상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카인은 동생을 죽이고 도망친 후 어떻게 살았을까. 작가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 카인을 소환한다. 특유의 환상적 요소의 도입, 우화적 수법, 독특한 내레이션 방식을 통해 아담과 하와의 창조에서부터 노아의 방주에 이르기까지 구약성서 속 주요한 사건들을 버무린다.
소설 속에서 카인은 성서 속 주요한 사건의 목격자로 재탄생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서 살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로부터 아들을 희생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지은 바벨탑, 악의 도시 소돔의 불기둥, 시나이산 기슭에 모인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가 그 죄로 죽임을 당한 사건, 노아의 방주 사건….
카인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건들에 개입되는 바람에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성서 속 진실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카인은 매번 목격한 사건에서 하나님이 행한 정의에 문제 제기를 한다. 태도는 불경스럽기 그지없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는 바람에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을 두고 치명적 호기심을 벌한 건 문제 있지 않느냐고, 불타버린 도시 소돔에는 죄 없는 아이들이 포함된 것 아니냐고 따진다. 심지어 여호와는 정의 관념이 이상한 것 같다, 하나님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성서적 주제를 한껏 즐겼다”고 평했고, “하나님의 논리에 허를 찌른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역설적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죄를 짓고도 하나님 탓 하는 카인 같은 삶의 태도를 비꼬는 것은 아닐까. 200쪽 남짓의 두껍지 않은 책에 평생의 사유를 녹여낸다. 해석의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정영목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인류 첫 악인’ 카인 구약 사건을 트집잡다… 노벨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화제작 ‘카인’
입력 2016-01-04 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