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출신 쿠엔틴 타란티노(53)와 멕시코 출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53)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진 작품을 연출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1963년생 동갑내기로 데뷔작부터 화제를 모았다. 범죄드라마 ‘저수지의 개들’(1992)로 혜성처럼 등장한 타란티노는 ‘펄프픽션’(1994)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스릴러 ‘아모레스 페로스’(2000)로 이름을 알린 이냐리투는 ‘버드맨’(2015)으로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등 4관왕을 휩쓸었다. 두 감독이 세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의 신작을 나란히 내놓았다. 타란티노는 액션스릴러 ‘헤이트풀 8’을, 이냐리투는 모험드라마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각각 선보인다. 두 작품 모두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삼았다.
# ‘저수지의 개들’ 서부극 버전 ‘헤이트풀 8’
타란티노의 8번째 작품 ‘헤이트풀 8’은 전편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처럼 서부극 형식이지만 결은 ‘저수지의 개들’과 닮았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의 미국 와이오밍 주를 배경으로 한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어느 날 오후, 교수형 집행인 존 루스(커트 러셀)와 죄수 데이지 도머그(제니퍼 제이슨 리)를 태운 마차를 누군가 세운다. 현상금사냥꾼 마커스 워렌(사무엘 L 잭슨)으로 그의 옆에는 범죄자 시신 3구가 있다.
워렌을 마차에 태운 루스는 이번에는 자신이 신임 보안관이라고 주장하는 크리스 매닉스(월튼 고긴스)를 만난다. 한 마차에 오른 4명은 해가 지고 눈보라가 더욱 심해지자 미니잡화점에 머물기로 한다. 그곳에는 또 다른 4명이 먼저 와 있었다. 멕시칸 이방인 밥(데미안 비쉬어), 연합군 장교 샌포드 스미더스(브루스 던), 리틀맨 오스왈도 모브레이(팀 로스), 카우보이 조 게이지(마이클 매드슨)가 그들이다. 이렇게 ‘증오의(hateful) 8인’이 다 모이게 됐다.
그런 가운데 독살이 발생하자 영화는 추리극으로 바뀐다. 숨겨둔 비밀이 밝혀지면서 파국적 결말을 맞이한다. 증오는 폭력을 낳고 폭력은 다시 증오를 낳는 법. 타란티노 감독은 특유의 핏빛 액션으로 이 사실을 보여준다. “흉악한 악당 무리가 있다. 바깥에는 눈보라가 몰아쳐 방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총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감독의 솜씨가 여전하다. 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167분.
# 디캐프리오의 복수를 위한 생존본능 ‘레버넌트’
1820년대 미국 서부의 전설적인 모험가 휴 글래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모피회사에 고용된 글래스는 동료들과 사냥을 떠났다가 인디언을 만나 일전을 벌이고 급기야 회색곰과 맞닥뜨려 목과 머리, 어깨와 허벅지 등이 갈기갈기 찢기는 중상을 입는다. 들것에 실려 숙영지로 복귀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자 대장은 동료 피츠제럴드에게 “글래스를 끝까지 돌보다가 죽으면 장례식을 제대로 치러주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목숨이 붙어있는 글래스를 묻어버리고 달아난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글래스는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추위, 배고픔과 싸워가며 4000㎞ 넘게 떨어진 숙영지로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인디언에게 쫓기고 생고기를 질겅질겅 씹고 폭설 속에서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극한상황에서 글래스의 생존의지가 꺼지지 않는 것은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배신감보다는 아들까지 죽게 된 것에 대한 복수심이 더 크게 작용한다. 글래스를 연기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인간의 생존본능이 얼마나 끈질긴지 놀라우리만치 리얼하게 보여준다.
피츠제럴드 역을 맡은 톰 하디의 연기도 뛰어나다. 영화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처럼 1820년대 미 대륙의 자연경관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았다. 인공조명은 사용하지 않고 눈과 물과 빛을 롱숏으로 촬영했다. 인간의 싸움 가운데 자연은 얼마나 장엄한지 얘기하는 것 같다. CG(컴퓨터그래픽)로 구현한 회색곰의 입김이 카메라 렌즈에 서릴 때 진짜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레버넌트(Revenant)는 ‘돌아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14일 개봉. 15세관람가. 156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타란티노 감독-이냐리투 감독 1800년대 美 서부 배경 신작 대결… ‘헤이트풀 8’-‘레버넌트’
입력 2016-01-0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