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시아파 지도자등 47명 사형… 종파 갈등 점화

입력 2016-01-03 21:44 수정 2016-01-04 00:35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건물 일부가 2일(현지시간) 밤 이란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다. 사우디가 이날 시아파 지도자를 포함해 47명을 사형하자 이란이 격렬하게 항의하면서 해묵은 종파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한 시아파 무슬림 여성이 같은날 사우디아라비아가 사형시킨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님르 알님르가 피를 흘리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왼쪽 사진). AFP연합뉴스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한 시아파 무슬림 여성이 같은날 사우디아라비아가 사형시킨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님르 알님르가 피를 흘리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 격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시아파 지도자를 포함해 테러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피고인 47명에 대한 형을 집행했다. 이에 대해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 등이 대대적으로 반발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이슬람 내 수니파와 시아파 간 해묵은 종파 갈등이 불붙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과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후계자 문제를 놓고 1400년 전부터 빚어진 두 종파 간 대립이 종주국 간 대결로 치달은 것이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은 2일 사형이 12곳에서 나뉘어 집행됐으며, 사형수 대부분은 사우디 국적자이고 이집트와 차드 국적자도 1명씩 포함됐다고 전했다. 특히 이란 등 시아파 진영이 사면을 강력히 요구해 왔던 사우디의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님르 알님르(50)도 이날 사형됐다. 알님르는 사우디 인구의 15%에 불과한 소수 시아파 권익 보장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며, 2011년 사우디 동부 알와미야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2012년 7월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우디 정부는 알님르가 ‘외부세력’과 결탁해 ‘폭동’을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외부세력이란 곧 이란을 의미한다.

사형 집행이 이뤄지자 이란 외교부는 주(駐)테헤란 사우디대사대리를 소환해 항의했다. 그러자 사우디도 리야드 주재 이란대사를 불러 “내정 간섭하지 말라”며 맞섰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튿날 현지 국영TV에서 “억압받은 순교자가 부당하게 흘린 피에 따른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사우디 정치인들은 신의 복수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도 성명에서 “사우디는 중세시대에서나 있었던 야만성을 드러냈다”며 “이번 처형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나 하는 짓”이라고 맹비난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중동 지역 헤게모니를 놓고 사사건건 대립해 왔다. 시리아와 예멘의 내전이 장기화된 원인도 사우디와 이란이 각각 자신과 가까운 세력을 배후에서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이란이 서방과 13년 만에 핵협상을 타결했을 때도 사우디는 노골적으로 반대한 바 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는 성난 시위대들이 사우디대사관을 습격해 건물에 불이 나고 일부가 파손됐다. 이란의 제2도시 마슈하드의 사우디총영사관 앞에서도 이란 시위대가 총영사관에 돌과 불붙은 물건을 던지고 사우디 국기를 찢었다. 전체 신도의 3분의 2가 시아파인 바레인을 비롯해 영국 내 시아파 무슬림들도 거리로 나와 사우디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갈등이 확산되자 사우디 우방인 미국과 유럽연합(EU), 독일 등이 잇따라 우려를 표시했다. 미국 국무부의 존 커비 대변인은 이날 “종파 갈등이 감소해야 할 시기임에도 알님르 처형으로 갈등이 악화할 수 있음을 특히 우려한다”며 “사우디는 모든 공동체 지도자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사우디 집단 처형에 대해서는 “몹시 경악한다”면서도 시아파 시위대에도 자제를 호소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