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구 공백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의장이 제시한 획정 기준을 받아든 선거구획정위원회는 회의 한 번에 ‘합의불가’를 선언했다. 공은 또다시 국회로 넘어왔는데 여야는 획정 작업에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국회는 손을 놓고, 독립기구인 획정위는 여야 대리전만 반복하는 출구 없는 상황이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획정위는 지난 2일 전체회의를 열어 선거구 조정을 시도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3일 밝혔다. 정의화 의장이 1일 0시부로 발표한 획정 기준은 ‘지역구 수 현행(246석) 유지’와 ‘자치구·시·군의 예외적인 분할 허용’이었다. 수도권 지역구 일부를 분구 대상에서 제외하되 그 수는 3개를 초과할 수 없다는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예컨대 서울 강남갑은 지난해 10월 기준 인구가 30만1688명으로 분구 대상이지만 일부 동을 인근 구에 붙여 쪼개지 않는 식이다. 현행 의석수를 유지하면서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3대 1에서 2대 1로 조정할 경우 농어촌 지역구가 크게 감소하는 문제를 감안한 조치였다. 정 의장은 5일까지 획정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획정위가 합의를 포기한 건 두 가지 쟁점에서 도저히 타협이 안 됐기 때문이다. 분구 대상에서 제외할 수도권 선거구 3곳을 정하는 것과 그만큼 확보된 의석을 농어촌 어느 지역에 배분할지의 문제였다. 미국 출장 중인 조성대 한신대 교수를 제외한 8명의 획정위원(위원장 포함)은 다음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헤어졌다. 획정위원들이 다시 만나 정 의장의 기준을 재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에 따라 획정위 안을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8일 본회의에 직권상정한다는 정 의장의 구상은 무의미해졌다. 여야 대표가 만나서도 못 풀고, 국회의장의 중재마저 무산되는 정치 부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의장실 관계자는 “이제는 의장의 중재 노력보다는 여야 지도부의 결단만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국회 상황은 암담하다. 새누리당은 ‘선(先) 민생법안, 후(後) 선거구’ 방침을 세웠다. 노동개혁 5법 등 쟁점법안을 처리하지 않고는 선거구 획정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간 의견 불일치로 합의에 어려움이 있다고 강조했다. 더민주는 쟁점법안별로 이미 많이 양보한 터라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법안 처리에 나서지 않고, 여당은 법안 없이 선거구도 없다고 버티면서 서로 수수방관하고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선거구 획정을 하긴 해야 하는데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의 공정성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선거구 공백이 길어지면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을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식의 임시방편으로는 현역 국회의원과 정치 신인의 공정한 경쟁을 담보할 수 없어서다. 현역 의원들은 획정이 지연돼도 의정보고 형식으로 선거운동을 계속할 수 있지만 후보 자격이 없어진 예비후보들은 손발이 묶이게 된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이슈분석-획정위, 국회의장 제시 기준 ‘합의 불가’ 선언] 선거구 공백 ‘끝’이 안 보인다
입력 2016-01-03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