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때 서울 구로동 일대 농지를 정부에 빼앗긴 땅주인들이 50년간 벌여온 소송에서 두 번의 재심 재판 끝에 승소했다. 대법원은 1차 재심 판단의 사유가 뒤늦게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그 재심을 취소할 수 있다는 첫 판례를 내놨다. 이로써 원주민들이 승소했던 1966년 민사소송 판결이 다시 효력을 갖게 됐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땅을 돌려받거나 그에 상응하는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재심에 대한 재심’도 가능=정부는 61년 9월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구로동 일대 약 100만㎡(약 30만평)의 땅을 강제 수용했다. 이 땅에 판잣집을 짓고 살던 농민들은 모두 쫓겨났다. 농민들은 63∼6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대부분 승소했다.
당시 정부는 땅을 돌려주는 대신 대대적인 ‘소송 사기’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소송을 제기한 농민뿐 아니라 관련 공무원까지 잡아들였다. 불법연행과 가혹행위 끝에 143명은 권리를 포기했다. 끝가지 버틴 41명은 최종적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26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정부는 이 유죄 판결을 근거로 민사소송에 대한 1차 재심을 청구해 89년 12월 승소했다. 땅주인들이 이겼던 재판을 정부가 재심을 통해 뒤집어버린 것이다.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8년 7월 진실규명 결정과 함께 재심을 권고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유죄 판결을 받은 26명 중 23명은 형사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이후 이들은 과거 정부가 제기했던 민사소송 1차 재심을 다시 심리해 달라며 법원을 찾았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옛 구로동 농지 주인들의 유족 채모(70)씨 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2차 재심에서 “국가 승소로 판결한 1차 재심을 취소한다”는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재심의 근거가 된 판결이나 행정처분이 이후 변경됐다면 재심 판결을 취소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경우 1차 재심은 취소되고, 종전의 원주민들이 승소한 판결의 효력이 되살아나게 된다”고 말했다.
◇원주민들 손해배상 가능…검찰 수사가 관건=원주민들은 법원에서 손해배상을 인정받는 방식으로 구제받을 전망이다. 옛 농지법에 따른 등기부 취득시효 문제 등으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는 사실상 어렵다.
현재 대법원은 원주민들이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여러 건을 심리 중이다. 재판을 받던 중 권리를 포기한 원주민 또는 유족 291명이 제기한 소송은 이자를 더한 소송가액이 1100억원을 넘어 단일사건으로는 사상 최고액이다. 앞서 서울고법은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소 취하는 무효”라며 정부에 650억여원의 배상책임을 물었었다. 원주민 이모씨의 유족 5명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정부는 32억여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검찰 수사 결과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서울남부지검은 소송을 제기한 원주민 중 ‘가짜 피해자’도 끼어 있다고 의심하고 재수사에 착수했다(국민일보 2015년 12월 29일자 1면). 국가의 가혹행위가 있던 시점 이전에 이미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한 상황이다. 또 손해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배상금을 산정하는 기준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법정에서 펼치고 있다. 손해산정 기준 땅값을 공단 개발 효과가 반영된 99년의 땅값이 아닌 60년대 당시 농지 가격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원주민들이 받게 될 배상액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구로공단 농지 강탈 농민들, 50년 만에 최종 승소
입력 2016-01-04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