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피해 유럽으로 향하는 대가를 불법 브로커들에게 지불하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돈, 하나는 몸.”
세 딸과 함께 독일에 정착한 시리아 출신 난민 여성 사마르(35)는 이렇게 말했다. 사마르는 고향을 떠난 이후 딸들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독일로 오는 길, 터키에서 강도를 당해 빈털터리가 된 그녀에게 불법 브로커는 자신과 성관계를 가지면 유럽에 데려다주겠다고 협박했다.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 사마르는 터키에서 일해 돈을 벌어 독일까지 올 수 있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중동 지역에서 유럽으로 떠나는 여성 난민들이 불법 브로커, 남성 난민들, 심지어 남편에게 ‘성폭력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30세의 시리아 출신 여성은 남편, 네 명의 자식과 함께 유럽행 피란길에 올랐다. 도중에 불법 브로커에게 지불할 돈이 떨어지자 남편은 돈 대신 아내를 ‘지불’했다. 그녀는 유럽으로 오는 3개월 동안 매일같이 브로커에게 강간을 당해야 했다. 현재 그녀는 베를린에, 남편은 독일의 다른 곳에 정착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남편이나 친척들이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그녀를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난민 여성들은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별도의 공간이 없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난민 신청자들이 머무르는 집을 관리하고 있는 잔 쉐바움은 “방은 모두 가득 차 있는데 4분의 3은 남성”이라면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한 여성은 “방문을 잠그는 장치가 없어 밤에는 장롱을 끌어다 문 앞을 막고 잔다”고 말했다.
베를린의 심리치료센터에서 성폭력 피해 난민 여성 40여명의 상처 치유를 돕고 있는 심리치료사 수잔 호에네는 “피해 여성들은 불면증, 집중력 상실, 정신착란 등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모든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들의 주요 관문 중 하나인 그리스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유엔 난민기구의 윌리엄 스핀들러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잔다”면서 “성폭력과 가정폭력 사례가 현장에서 보고되고 있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시리아 여성난민, 피난길 성폭력에 무방비
입력 2016-01-03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