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좌우로 쏠린 美, 불붙은 이념戰

입력 2016-01-04 19:55

미국 학계와 워싱턴DC 정가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대선 이후가 걱정스럽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만큼 이번 대선의 후유증이 클 것이라는 의미다. 그동안 미 대선은 중도층 표를 흡수하기 위해 민주당의 경우 중도적 진보 노선, 공화당은 중도적 보수 노선으로 표심을 공략해 왔다. 하지만 이번 대선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들과 지지자들은 기존보다 더 진보적으로 변했고, 공화당 후보들과 지지자들 역시 더욱 노골적인 보수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만큼 양측의 적대감이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지 언론은 이런 경향을 두고 미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분열’이 더욱 심화됐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유권자 성향 분석을 살펴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WSJ에 따르면 미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인 총기규제 문제와 관련해 공화당 지지자의 59%는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미국 총기협회의 입장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는 11%만 그런 입장에 동조했다.

흑인차별 철폐 운동에 대해서도 민주당 지지자들은 46%가 이를 지지하지만, 공화당 지지자들은 6%만 그런 입장을 나타냈다. 동성애자 권리 옹호에 대해서도 민주당 지지자의 63%가 지지한 반면 공화당은 14%만 지지했다. 기후변화 대응 문제도 민주당 지지자들의 62%가 즉각적인 대응 필요성을 요구한 반면 공화당 쪽은 13%만 그런 입장이었다.

이런 경향은 미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1994년과 2014년의 유권자 이념성향 비교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94년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 중 70% 정도가 ‘평균적인 공화당 지지자’보다 더 진보적이었고, 공화당 지자자의 64%가 ‘평균적인 민주당 지지자’보다 더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2014년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의 94%가 평균적인 공화당 지지자보다 더 진보적이었고, 공화당의 경우 92%가 평균적인 민주당 지지자보다 더 보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그만큼 미국 사회가 극단화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8년간 건강보험 문제와 불법이민자 문제 등 이념적으로 대립해온 이슈들을 강하게 추진하면서 유권자층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를 감안해 민주, 공화 양당 대선 경선 주자들은 각각 이전보다 더 ‘좌클릭’ ‘우클릭’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본선 레이스에서도 남미 출신의 불법이민자 처리 문제와 시리아 난민 수용, 총기 규제, 기후변화, 세금, 낙태 찬반, 사형제 존치 등의 민감한 이슈가 즐비해 있어 표심이 더욱 갈라지면서 이데올로기적 투표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69) 후보가 이런 이념적 분열로 성공적인 예비경선을 치러왔기에 경선 과정은 물론 본선 때도 이념선거 프레임으로 끌고갈 가능성이 높다.

손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