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 수가 외환위기 때 수준에 육박했다. 기업들의 신용 악화로 회사채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회사채 발행으로 기업이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기능이 마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업 수(부도 포함)가 61개사로 집계됐다고 3일 밝혔다. 이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신용등급 강등 기업 수(63개)에 근접한 수치다. 지난해 등급이 올라간 기업은 8곳에 그쳤다.
‘부정적’ 등급 전망을 받은 기업은 2013년 11개에서 2014년 29개, 지난해 30개로 늘어났다. 한기평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대다수 조선사와 일부 철강 기업, 효성캐피탈 등 기타금융회사의 신용도가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두산건설·두산인프라코어·두산중공업 등 두산그룹 계열사들도 신용도가 악화됐으며, 동부팜한농·쌍방울·한진해운·동국제강은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떨어졌다.
신용등급 악화는 회사채 발행 실패와 거래 부진으로 이어져 자금난에 빠지는 기업이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 장내·외 시장의 회사채 거래량은 120조2295억원으로 전년보다 39조3658억원(24.7%)이나 감소했다. 한기평 평가기준실 송태준 전문위원은 “경제 전반의 분위기 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워 기업들의 신용 악화는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행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비우량등급(A등급 이하) 회사채의 발행과 유통이 위축되는 현상은 우량등급(AA등급 이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량등급 회사채 순발행 규모는 지난해 1분기 3조원, 2분기 3조6000억원에서 3분기에 8000억원으로 급감했다. 비우량등급은 발행보다 상환이 더 많은 상황이 지속됐다. 순발행 규모가 지난해 1분기 -3조6000억원, 2분기 -7000억원, 3분기 -1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유통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전체 회사채 거래량에서 비우량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1분기 25.2%에서 2분기 22.6%로 줄어들더니 3분기엔 20% 아래(19.0%)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신용위험 기피 경향이 우량등급으로 전이돼 과도한 투자심리 위축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자심리를 안정시키는 단기적 대책과 회사채 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회사채 수요기반 확충 및 유통시장 구조개선 방안을 올해 초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작년 신용등급 강등 61개社… 환란 수준
입력 2016-01-03 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