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인 1일 오후 7시 서울 노원구청 앞에 특별한 식탁이 차려졌다. 이름은 ‘러브 투게더(Love Together)’. 서울 노원구 상계교회가 가출청소년이나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 운영하는 ‘청소년 심야 무료식당’이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오후 10시까지 50여명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찾아와 빈 배를 채우고 갔다.
메뉴는 따뜻한 쌀밥에 콩나물국, 닭볶음, 어묵, 깍두기 등이었다. 후식으로 바나나와 귤, 건빵, 커피, 녹차도 제공됐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판을 비운 뒤 또 다시 식판에 음식을 담았다.
러브 투게더 무료식당은 2014년 11월 첫 주에 시작됐다. 이 교회 서길원(53) 목사가 특이한 보고를 받은 게 계기였다.
“거리의 아이들이 교회 선교관에서 자고 갔는데, 담배꽁초와 위장약 봉지가 나왔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위장약이 왜 나왔는지 궁금해서 이유를 알아봤죠. 집 나온 아이들이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고 제때 밥을 먹지 않아 위장에 탈이 많이 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한 게 이 천막 식당입니다.”
서 목사는 담당교역자를 세우고 청소년 밥퍼 사역에 착수했다. 3개월여 전문가의 조언을 청취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돕겠다는 손길도 이어졌다.
러브 투게더 식당은 맛있는 식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과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담소와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박모(17)양은 이곳에서 변화된 사례다. 중학교를 중퇴한 뒤 남자친구와 동거해온 박양은 “어색하지 않게 상담을 해주시니까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면서 “지금은 진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환히 웃었다. 동네에서 폭력을 일삼던 김모(17)군도 이곳을 통해 삶이 달라졌다. 김군은 “교회 분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경찰서에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러브 투게더 사역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지역교회가 시작한 청소년사역에 구청과 경찰서까지 힘을 보태주고 있다는 점이다. 구청에서는 상담사와 편의시설을 제공해주고, 인근 경찰서에서는 관심 청소년을 이곳에 보내 쉼을 얻게 하고 있다. 직접 배식을 하는 공무원들도 여럿 있다.
상계교회는 매주 30여명이 조리 설치 철거 배식 상담 설거지 등 6개 팀으로 나뉘어 따뜻한 식사 한 끼를 준비한다. 지나가는 시민 중엔 “왜 거리 청소년에게 밥을 주느냐”고 쓴 소리를 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사역팀은 그래서 더욱 아이들 때문에 시끄럽다거나 담배꽁초로 거리가 지저분해졌다는 민원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노원경찰서는 지난달 1일 교회에 감사장을 보내왔다. 이 사역이 시작된 뒤 노원구 청소년 범죄율이 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1월 열린 교회 전도축제에도 12명의 아이들이 다녀갔다.
러브 투게더 담당교역자인 이현우(41) 목사는 “10년 뒤, 20년 뒤 아이들이 상계교회는 기억 못해도 이곳에서 밥 먹은 것은 기억하며 ‘나도 어려운 청소년과 이야기해 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청소년 위한 심야식당 ‘러브 투게더’ 봉사 현장 르포] “따뜻한 밥심으로 험난한 세상 이겨내거라”
입력 2016-01-03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