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이 밝았다. 묵은 달력을 치우고 새 달력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군대 간 아들에게서는 곧 휴가 나갈 거라는 전화가 걸려오고, 요 몇 년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던 친한 후배도 ‘새해 복 많이 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내온다.
그렇다. 새해는 그래도 좋은 것이다. 지난해의 슬픔과 고단함은 지난해의 일로 정리되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결심을 해볼 수 있다는 것.
새해를 맞이해 나도 지난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자 여행을 다녀왔다. 그렇다고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새해 첫 해를 보러간 건 아니고 작심하고 455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 ‘메이블 이야기’를 읽으며 스코틀랜드의 부둣가와 케임브리지의 숲 속으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다.
‘짐승과 인간, 살아 있는 존재의 고통과 아름다움에 관한 명상이 담긴 매혹적인 작품’이라는 피플지의 헌사처럼 어느 날 갑자기 길거리에서 심장마비로 떠난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충격 앞에서 세상과 벽을 쌓고 지내던 여자가 어릴 때부터 꿈꿔온 야생 참매를 조련하기로 결심하고 그 매를 조련하는 과정을 기록하면서 삶을 회복해가는 논픽션의 감동을 몇 줄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녀의 기록을 좇아 진흙탕에 빠지고 가시덩굴 숲을 헤매는 동안 오래된 나의 슬픔도 깊게 위로받았다는 것만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 감당할 수 없는 크나큰 상실과 슬픔을 겪는다. 야생 참매를 길들이는 것만큼이나 그 깊은 슬픔을 길들이는 일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새해가 왔는데도 그 슬픔 속에서 살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남쪽 바다에 자식을 묻어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녀는 썼다. ‘백합이 집을 향기로 채우듯 참매가 집을 야생으로 채우고 있었다’고. 돌아올 수 없어서 용서를 구할 수도 없는 그 깊은 슬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새해에는 눈물이 아니라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그 슬픔을 가득 채우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안현미(시인)
[살며 사랑하며-안현미] 슬픔을 길들이는 일
입력 2016-01-03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