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안에서 백발에 수염을 길게 기른 한국 작가가 그림을 그린다. 손에 쥔 건 붓이 아니라 에어 스프레이다. 캔버스가 사람 키 몇 배의 엄청난 크기라 기중기에 올라가 스프레이를 뿌리기도 한다. 물감을 뿌리는데도 다음날이면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얼굴이 점점 뚜렷해진다. 관우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속 인물이다. 찢어진 눈은 매섭고 꽉 다문 입매엔 위엄이 서려 있다. 너무 생생해 캔버스 밖으로 걸어 나올 것 같다.
극사실주의 초상화 작업으로 유명한 강형구(62) 작가가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동시에 초대전을 갖고 있다. 미술 한류로 중국 진출이 느는 추세지만 중국 대도시 2곳에서의 동시 전시는 처음이다. 강 작가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해 12월 초순부터 시작된 중국 전시에 대해 설명했다. 구불구불한 백발과 수염, 동그란 앤틱풍 안경 탓에 ‘반지의 제왕’의 등장인물이 연상되는 외모다.
“새로운 개념의 전시입니다. 작가가 라이브 쇼 하듯 관람객을 등 뒤에 두고 작품을 완성해갔지요.”
개막 두 달 전부터 전시장에서 작품 활동을 한 게 입소문이 나면서 개막식은 성황을 이뤘다. 현지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중국에는 이제 진출하는 것인 만큼 신인의 자세로 임했다”며 “저 정도 되는 작가라면 어시스턴트를 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직접 하나하나 작품을 완성했음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거의가 4∼6m의 대작들이지만 현지에서 7점이나 완성했다. 그는 “구경 온 사람이 다시 오고,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신명이 나고 어깨도 무거워 하루 26시간씩 그렸다”면서 “작업 신기록이 될 것”이라며 슬며시 웃었다.
메릴린 먼로, 고흐 등 유명인을 사진보다 더 정교하게 표현해 극사실주의 작가로 불린다. 붓자국이 남는 회화의 느낌이 싫어 스프레이를 써서 그린다. 사진작업을 하지 굳이 회화일까. “사진이라면 90세의 제 자화상, 요절한 메릴린 먼로의 늙은 초상 같은 건 불가능하지요.” 허구를 그린다는 점에서 자신을 극사실주의 작가로 분류하는 건 틀렸다고 했다.
2월 19일까지 열리는 상하이현대미술관(MOCA)에 50여점, 2월 26일까지 이어지는 베이징 파크뷰 그린전시홀에는 30여점을 풀었다. 원시시대의 북경원인, 등소평과 루쉰 등 중국적 소재들이 현지 작업을 통해 대거 선보인다. 베이징 전시는 최신작, 상하이 전시는 회고전 형식으로 꾸몄다.
손영옥 선임기자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초상화… 대륙의 시선 사로 잡다
입력 2016-01-04 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