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해외봉사단 ‘라온아띠’ 지원 이유 들어보니…“도와주러 갔다가 나를 채우고 옵니다”

입력 2016-01-01 05:00
대학생 해외봉사단 ‘라온아띠’ 단원 두 명이 지난해 5월 인도의 한 마을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 숙소로 걸어가고 있다. 라온아띠 제공

“아버지의 발차기가 그렇게 높이 올라가는 건 처음 봤어요. 하하.” 박선하(26·여)씨는 해외 오지 마을에서 지내다 오겠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맞을 뻔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끝내 아버지를 설득해 간 곳은 태국 북부 국경지대 산골마을이었다. 나무로 지은 집에서 다섯 명 태국 가족과 지냈다.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박씨는 2009년 3월부터 5개월간 이곳에서 대학생 해외봉사단 ‘라온아띠’ 2기 단원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KB국민은행과 YMCA가 운영하는 ‘라온아띠’는 2008년 아시아 7개국 10개 지역에 봉사단원 50명을 보내며 첫발을 디뎠다. 지난 24일 15기 단원 22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3월에 출국한다.

지난 8년간 라온아띠에 대학생 2만5451명이 지원했고, 467명이 뽑혔다. 2012년에는 단원 30명을 선발하는 데 2207명이 몰려 73.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8년간 평균 경쟁률은 58대 1. 이 정도면 취업보다도 어려운 셈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집계한 2015년 대졸 신입사원 취업경쟁률은 평균 32.3대 1이었다.

엄청난 경쟁을 치르면서 오지 봉사활동을, 그것도 한 학기를 통째로 휴학하고 사서 고생하려는 이유가 뭘까. “남을 돕고 싶다” “봉사의 삶이 매력적이다” 따위의 거창한 답은 없었다. 이들의 공통된 얘기는 “한국에서 할 수 없는 고민과 경험을 하고 싶다”였다.

라온아띠 단원으로 선발되면 해외 현지 비정부기구(NGO)의 일을 도우며, 오지마을에서 생활한다. 이번에 선발된 손현경(20·여)씨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아졌다.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기남(22)씨도 “목표를 정하지 못한 채 토익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데, 나의 진로를 찾고 싶다”고 했다. 불안, 걱정, 고민을 풀기 위해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2005년 탈북해 2008년 한국에 정착한 장다희(21·여)씨는 “가난 탓에 북한에서는 ‘꿈’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하루하루 살기도 버거웠다. 이번 기회에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싶다”고 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스리랑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서현식(22)씨는 “아무래도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다. 또 다른 문화를 체험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봉사’라는 말 대신 ‘자원 활동’이라고 부른다. 도와주러 간다지만 정작 자신이 배우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2008년 1기 단원으로 동티모르에서 5개월간 지낸 김두호(33)씨는 그때를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대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한 상태였지만 4200만원 연봉을 포기하고 오지로 갔다. 친구들이 “취업하고 돈 벌어 결혼해야지, 어떡하려고 그러냐”며 걱정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김씨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오니, 나만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농촌지도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오지의 경험’은 직업이 되기도 한다. 고두환(29)씨는 2008년 태국에서 공정여행 개념을 처음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에 돌아온 뒤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공정여행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태국 마을에서 시끌벅적하게 어울려 살며 즐거웠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일하고 있다”고 했다.

YMCA국제협력팀 양동화 팀장은 “라온아띠는 단기 활동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지역 주민과 긴 시간을 함께 보낸다”며 “이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시민을 키워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