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새 시대의 조건] 과거와 미래, 적절히 균형 맞춘 모범 답안…“백 투 더 1998”

입력 2016-01-01 05:08
한·일 관계는 순탄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한쪽이 한쪽을 식민지배한 과거사 때문이다. 그래서 1965년 수교 이후로도 부침을 거듭해왔고, 최근 들어선 양국 국민의 감정조차 싸늘해졌다. 한국에서는 반일(反日), 일본에서는 혐한(嫌韓) 감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12·28 한·일 합의’가 양국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도 이런 사정에 일부 기인한다.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 일부 일본 우익인사들의 퇴행적 과거사 인식과 함께 한·일 관계의 해묵은 난제였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정부 간 합의만으로 봉합될 리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새로운 양국관계 비전을 제시해 여론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31일 “현재 동북아 질서 속에서 일본을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일본과의 협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대전략을 갖출 필요가 있다”면서 “한·미·일이라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한국 외교의 역할이 필요하다. 대화를 통한 제도화 등 일본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향 설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은 “한·일이 왜 이 시기에 협력을 공고히 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협력할지 정확하게 비전을 제시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라면서 “위안부 합의 이후의 논란이 조금 가라앉고 나서 한·일이 공동행동을 해야 할 필요성을 어느 분야에서든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박 소장은 “여기에는 안보 분야도 포함된다. 북한 문제 같은 안보 사안에서는 일본과도 물론 협력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 총리가 1998년 채택한 ‘한·일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모델로 삼을 만하다.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전 총리는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밝혔고, 김 전 대통령은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을 강조한 바 있다.

이후 김대중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등을 계기로 양국 교류·협력은 날로 긴밀해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에 이어 2003년에는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류(韓流)’ 열풍의 단초를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망언,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지던 끝에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하면서 한·일 관계는 냉각기로 돌아섰다.

박철희 소장은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1998년 공동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전문가가 많다”면서 “한국에서는 일본의 반성 메시지인 ‘고노·무라야마 담화’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두 담화를 바탕으로 미래를 지향하자고 선언한 게 당시의 공동선언”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와 미래에 균형을 맞췄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재평가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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