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명호] 2016년, 안철수는 살아남을까

입력 2015-12-31 18:04

“천국에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옥에 가는 길을 숙지하는 것이다.” 참 절묘한 표현이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의 말인데, 뭔가 이루기 위해서는 실패를 피해갈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는지 되돌아보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경구다.

지난달 탈당한 무소속 의원 안철수는 정치에 입문한 지 3년이 좀 지났다. 지금까지만 본다면 안철수의 ‘새정치’는 일단 실패했다. 정치는 굳은 신념이나 선한 의도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결과로 평가받는다. 낡고 찌든 정치에 반발해 생긴 ‘안철수 현상’이라는 정치·사회적 담론을 그는 자신의 그릇에 담아내지 못했다. 탈당은 이제부터는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기회는 남아 있다.

2016년, 총선이 있는 올해 상반기 중 정치 분야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릴 사람은 안철수일 게다. 총선까지 가 봐야 알겠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연대는 없다고 공언했으니 다당제로 귀착될지, 야권이 어떻게 재편될지, 한국 정치지형에 무슨 변화를 줄지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그런 관심의 밑바닥에는 소수의 보수·진보 극단세력이 정치를 수십 년 독과점하고 있는 데 대한 염증, 모든 현안을 선악 구조로 가르는 배타적 친노 세력에 대한 혐오감, 지역주의를 되살리는 대통령과 친박의 독선·오만에 대한 불만, 정치 무능에 대한 총체적 비판 등이 자리하고 있다. 고황(膏 )에 든 정치는 우리 사회의 합리적 여론이 수용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것 같다.

그렇다고 앞으로 안철수의 정치가 성공할까. 그가 하기에 달려있다. 실패를 피해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우선 그는 ‘철수(撤收) 정치’라고 비판받을 만큼 결정적 선택의 시기에 국민에게 실망을 준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지금도 기로에 있다. 그는 새정치 세력을 공언했다. 그런데 주위에는 낡은 체제 속에 있던 국회의원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국회의원 수가 현실적으로 중요한 요소이지만, 원내교섭단체 구성에만 안달한다면 새정치와 맞지 않게 흐를 가능성이 높다. 호남 편향성을 극복하고, 합류하는 국회의원 모두가 공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새로운 시각의 다양한 전문가를 세력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그동안 이런 일을 조직적으로 하지 못했다. 탈당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안철수는 당 국회의원 중에 경제·외교·IT 전문가가 전혀 없음을 한탄했다. 당내 팽배한 운동권 문화가 합리적 시각의 전문가 그룹들을 배척한 결과라고 봤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정말 배운 게 많다고 역설적으로 말했다(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많이 단련됐다는 뜻이었다.

셋째, 중도개혁이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인 전략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모호하고 추상적인 정치를 한다면 또 실패다. 그가 탈당하자마자 일정 부분 지지도를 확보한 이유는 이념·지역으로 나뉜 양 극단세력의 싸움에 진절머리 치는 여론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여론은 안철수에게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묻고 있다. 중도개혁 방안이 제시되면 야권뿐 아니라 여권에서도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구심력을 갖게 된다.

구태를 확실히 배제하고, 각계 전문가 등 능력 있는 사람을 모으고, 구체적인 혁신 방안과 전략을 내놓는 것만이 지난 3년의 실패를 피하는 길이다. 그래야만 제2의 안철수 현상이 생길 수 있고, 그가 내건 새정치를 펼칠 수 있는 청사진이다. 그렇게 못하면 2016년이 끝나기 전에 안철수는 의미 없는 정치인으로 돼 버릴지도 모른다. 한국 정치에서 제3의 후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처럼.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