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새해를 여는 말

입력 2015-12-31 18:05

시인 이해인은 새해를 ‘사랑’으로 맞는다고 했다. 그는 시 ‘새해 아침에’에서 ‘…밤새 내린 흰 눈을 바라볼 때의/그 순결한 설레임으로/ 사랑아/ 새해 아침에도/ 나는 제일 먼저/ 네가 보고 싶다’고 노래했다.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오전 7시26분 독도를 시작으로 한반도 곳곳에서 태양이 떴다. 반드시 ‘말갛게 씻은 얼굴’로 솟아오르는 해가 아니라도 좋다. 새해를 반기는 각자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각오를 다지고 옹골찬 출발을 결심한다. ‘혼용무도(昏庸無道·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는다)’의 지난해를 보냈기에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각별하다.

여러 단체 등에서 새해를 여는 말을 내놨다. 주로 조어력이 좋은 한자였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도약·도전’의 ‘도(跳)’를 골랐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에 회원들의 바람을 담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신년사에서 ‘불구일격(不拘一格·한 가지 규격에 얽매이지 않는다)’을 강조했다. 학생들이 마음껏 개성을 살렸으면 한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 등을 번역해 온 한국고전번역원은 ‘살필 성(省)’을 화두로 들었다.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새해를 염원하자는 의도에서다. 매년 말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 온 교수신문은 2006년부터는 매년 초 ‘희망의 사자성어’를 발표했다. 전자가 현실의 문제점을 꼬집는 말이라면 후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 담긴 단어다. 작년 희망의 사자성어는 ‘정본청원(正本淸源·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이었다. 올해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스스로를 격려하는 좋은 말들이 넘친다. 그러나 한 해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말은 상대에 대한 진정성 있는 덕담이다. 이는 남을 배려해 온 세시풍속이기도 하다. 참고로 ‘생자(生子)’ ‘득관(得官)’ ‘치부(致富)’ 등은 조상들이 축원해 온 대표적 덕담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