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16년 새 아침, 새 소망을 담다 - 갈등과 분노 넘어 공존과 번영 향해 나아가자

입력 2015-12-31 18:07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맞는 심경은 여느 해처럼 경건하나, 마음 한쪽이 무겁다. 우리 앞에 놓인 국내외의 어려운 여건들 때문이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무수한 외침을 이겨내고,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새삼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는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강한 자신감으로 난제들을 해소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다져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계속 전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모든 이들이 한마음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 지향점은 공존과 상생의 살맛나는 공동체다. 이를 위해선 나보다 이웃, 나아가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나만 잘살면 되지’라는 이기주의와 ‘나만 옳다’는 독선주의를 벗어던지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널리 퍼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지난 2015년은 피곤한 해였다.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이어서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충분했으나 결과는 미흡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파장, 메르스 공포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론은 분열됐다. 무능과 무책임, 종북, 불통, 비리 등 우리 사회의 단골 메뉴들이 재등장하는 난장(亂場)이 곳곳에서 이어져 평온한 날이 거의 없었다. 그 사이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갈등을 조정하고 국민 통합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머리를 맞대 국가의 미래 전략을 새로 짠 뒤 힘차게 밀어붙여도 시원찮을 판에 ‘내 탓이오’는 없고 상대만 탓하며 소일했으니 역사에 죄를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생산적인 대결정치로 일관했던 여야가 오는 4월이면 표를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20대 총선이다. 머지않아 장밋빛 공약들을 앞다퉈 내놓으며 혹세무민하고, ‘정권 심판론’이나 ‘야당 심판론’을 들먹이며 이전투구를 벌이는 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간 양자 대결구도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됐던 선거판에 ‘안철수 신당’이 가세해 더욱 혼탁해질 조짐이다. 정당 입장에서야 선거 승리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정당 간 싸움으로 우리 사회에 갈등과 반목이 확산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국가의 몫으로 남게 된다는 점이 벌써부터 우려스럽다. 결국 유권자들이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 어느 정당과 후보가 민생과 국익을 위해 일을 더 잘할지 냉정하게 판단해 기표소에서 심판해야 한다. 정치가 변해야 나라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 이번 총선이 진정한 정치개혁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주변을 돌아보면 일자리를 잃거나 찾지 못한 이들이 늘었다. 지난 연말 국제 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가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 등급으로 상향 조정했으나 구조조정의 한파는 새해에도 맹위를 떨칠 것으로 예상된다. 청년실업 문제도 좀처럼 해법이 안 보인다. 가계마다 빚이 쌓여가고, 부동산 시장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지지부진하다. 기업들도 저마다 아우성이다. 이런 경제적 요인들 또한 우리 사회의 갈등지수와 분노지수를 상승시키고 있다. 나라 밖 사정마저 여의치 않다. 지난달 금리를 인상한 미국이 또 금리를 올릴 움직임을 보이면서 외국 자금의 이탈이 지속되고 있고, 제1 수출국인 중국의 성장이 둔화됐고, 저유가가 지속되는 등 악재들이 널려 있다.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등 경제 체질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각종 규제 혁파를 비롯해 기업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겠다. 일자리 창출과 이를 통한 소득 증대, 그리고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에도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 또한 갈등 유발 요인이다. 정부가 원칙을 지키되 보다 유연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 지난해 어렵사리 성사된 남북 차관급 회담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종료됐으나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회담의 정례화 등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는 노력을 계속 경주해야 한다. 54년 만에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이룬 쿠바, 핵 협상을 타결지은 이란으로 인해 김정은 정권이 변화의 바람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중국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의 길을 택하도록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 간 합의로 최악이었던 양국 관계 정상화의 물꼬가 트인 상태다. 한·일 관계 복원을 통해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혀나가야 할 시점이다. 오는 11월 차기 미국 대통령이 선출된 이후에도 빈틈없는 한·미 동맹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6월 울산에서 일어난 ‘모세의 기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터널 내 차량 6중 추돌사고 현장으로 출동한 119 구급차량의 진입로를 터주기 위해 200여대의 차량이 일제히 터널 양 끝으로 붙어 부상자를 무사히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전북 전주에서는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가 16년 동안 이어졌다. 우리나라가 발전을 거듭해온 기저에는 이런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새해의 눈부신 태양이 떠올랐다. 국민 모두가 갈등과 분노, 불화를 넘어 공존 번영을 향한 발걸음을 성큼 내딛는 한 해가 되기를 희원(希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