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 총선을 시작으로, 2017년 대통령선거, 2018년 지방선거까지 전국 단위의 큰 선거가 3년 연속 치러진다. 바야흐로 국민들이 민의(民意)의 채찍을 들어야 할 때다.
유권자들은 정당과 정치인들이 공약 사항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올바로 평가해 투표해야 한다. 그래야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로 뽑힌 이들이 유권자를 두려워하고 국민을 바라보는 정치를 할 것이다.
최근 이사를 하면서 책을 정리하던 중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집’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을 출입하면서 집권 후 공약 이행과정에 대한 후속 취재를 위해 직접 산 책이다. 공약집을 펼치면 첫 페이지에 빨간 글씨로 쓰인 ‘국민행복 10대 공약’이 나온다. 그중 ‘약속 2’는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이다. 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이라는 설명에 체크가 돼 있다. 그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정책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공약집에는 ‘종합육아서비스 체계 구축’이라는 큰 틀 속에 ‘0∼5세 보육 및 교육 국가완전책임’이 포함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0∼2세 영아 보육료 국가 전액 지원 및 양육수당 증액, 양육유형 선택권 보장, 3∼5세 누리과정 지원비용 증액 및 중·저소득층 방과후 비용 소득기반 차등 지원이다. 이를 위한 실천 방안으로 관련 예산의 안정적 확보를 새누리당은 약속했다.
김현숙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행복한 여성추진단장’을 맡아 무상보육 공약을 주도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도 대선캠프에 참여해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등 박근혜 후보의 복지공약 재원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마다 빚내지 않고 국가예산으로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고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분명한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만 5세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무상보육을 실시한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하고 집권했다는 것이다. 그 약속을 믿고 표를 준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을 놓고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이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며 법적 다툼으로까지 비화될 지경에 이르렀다. 학부모들은 새해 벽두부터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의 누리과정 지원이 끊길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누리과정 지원에 필요한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교부금으로 충분히 내려 보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도교육청은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을 별도로 책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급기야 서울시와 광주·전남은 시·도의회가 어린이집 및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하지 않았고 세종, 전북, 강원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했다.
누리과정 예산은 서울시내에 강당·체육관이 없는 162개교, 급식실이 없는 412개교의 교육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돈이다. 시·도교육감들은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하게 되면 지방교육재정이 잠식돼 학교의 열악한 노후시설을 개선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물론 교육감들과 시·도의회가 누리과정 예산편성 자체를 거부해 보육 대란을 방임하는 것도 책임 있는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애초에 국가가 무상보육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다. 보육 관련 시민단체들도 “만 3∼5세 누리과정 보육예산은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종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
[세상만사-김재중] 누리과정 공약을 기억한다
입력 2015-12-31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