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우리, 집] 멋진 동물원의 동물들 표정이 왜 저러지?

입력 2015-12-31 19:45
세상에서 우리 집이 최고라는 건 다섯 살 박이도 안다. 모처럼의 휴가, 세련된 호텔, 멋진 리조트에서 방방 뜨며 좋아했던 아이. 막상 집에 돌아와서는 손 때 묻은 제 장난감이 널브러진 제 방이 제일 편하고 좋다며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동물들도 제 집 자랑이 한창이다. 첫 장면에서 빽빽이 들어선 회색 빌딩 숲 사이로 세상과 분리된 듯 아늑한 초록의 공간이 보인다. 잘 다듬은 나무, 궁궐을 연상시키는 멋진 지붕, 예쁜 연못…. 척 봐도 동물원이다. 시설도 훌륭하다. 목이 긴 기린을 배려한 키다리 식탁, 방귀 냄새 지독한 스컹크를 위한 강력 탈취 시스템을 갖춘 청결 화장실, 물놀이 좋아하는 수달을 위한 수상주택, 몇 대가 모여 사는 미어캣을 위한 공동주택…. 그 집에서 동물들은 맛있게 밥 먹고, 우아하게 차 마시고, 멋지게 인테리어를 꾸미고,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소파에서 뒹굴뒹굴할 때 은갈색 털 미어캣이 짓는 저 편안한 표정이라니.

그렇게 멋지게 집 소개를 마친 동물들이 아직 할말이 남았나? 퇴장하지 못하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전체를 회색 톤으로 부옇게 처리한 그 페이지에서 동물들의 얼굴은 갑자기 심각해 보인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 다른 페이지의 두 배 크기로 펼쳐지는 접지 페이지에 아연 광활하고 푸른 대자연이 나타난다.

그렇다. 아무리 첨단 시스템을 갖춘 동물원이라지만 야생의 환경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동물원의 의미와 동물들의 진짜 집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끄는 그림책. 의인화된 동물과 일부러 과장한 연출을 통해 쉽지 않은 주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 솜씨가 빼어나다. 자매 작가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데 보기 드문 수준작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