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날 구원하신 예수께’ 321장(통 35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3장 16∼17절
말씀 :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렸고 또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였습니다. 17장에서도 또 나오는 소리입니다. 두 번이나 반복되는 예수님을 행한 하늘의 소리를 살펴봅시다.
이 세상에는 부모와 자녀가 살아갑니다. 그들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사랑하는 자녀들 때문에 속상한 경우도 많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것만큼 가슴 아프기도 하고 때로는 자녀들 때문에 불행한 경우도 많습니다.
자녀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부모 공양을 하지 않아 법의 판단을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사랑하지만 그만큼 기쁘고 즐거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윗은 셋째 아들인 압살롬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형을 죽이고 도망가는 못된 짓을 합니다. 아버지 다윗이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그래도 다윗은 그 못된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결국 도망간 아들을 데려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결국 아버지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는 반역을 저지릅니다. 이보다 더 못된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아버지인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사랑합니다. 결국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싸워 압살롬이 죽고 다윗은 다시 왕위에 오릅니다.
그런데 다윗이 슬퍼하며 외친 말이 성경에 나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 18:33). 다윗의 사랑과 슬픔이 동시에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지만 결코 기쁠 수 없는 아들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일 뿐 아니라 기뻐하는 자였습니다. 하늘로부터 확인해 주는 소리가 마태복음에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사랑하고 또한 기쁜 아들이었을까요? 그 분은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것을 순종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니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도 아버지께서 원하시니 감당했습니다(26:39∼42). 죽음조차도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감당하시는 주님을 하늘 아버지께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사랑은 영원합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과연 하늘 아버지께서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랑을 받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모습은 아닌지 점검합시다.
기도 : 우리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위해 어떤 말씀이라도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다짐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
[가정예배 365-1월 3일] 사랑하는 그리고 기뻐하는 아들
입력 2015-12-31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