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사진) 예술감독이 연주를 마치고 지휘봉을 내려놓는 순간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는 전날 사임을 표명한 정 감독의 마지막 연주였다. 이 때문에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물론 객석까지 공연 내내 무거운 긴장감이 맴돌았다. 23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서울시향의 연주에 귀 기울였다.
연주가 끝났을 때 객석을 향해 돌아선 정 감독은 다소 지쳐 보였다. 하지만 10분 넘게 박수갈채 속에 커튼콜이 이어지고 수십여명의 팬들이 꽃을 전달하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정 감독은 단원 85명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여자 단원 대부분은 눈물을 흘렸고, 남자 단원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관객도 눈시울을 붉혔다.
공연 시작 30분전부터 단원들은 콘서트홀 로비에서 연미복을 입은 채 정 감독을 변호하며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의 인권유린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는 호소문을 배포했다. 가슴 또는 팔에 인권을 상징하는 비둘기와 손 모양의 상징물을 부착한 단원들은 ‘서울시향 단원 일동’ 명의의 호소문에서 “박 전 대표는 ‘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사무국 직원들에 대해 언어폭력 및 인권유린을 자행해 취임 이후 2년여 동안 사무국 직원 27명 중 13명이 퇴사했다”며 “박 전 대표의 퇴임 이후에도 직원들은 불안,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부고발을 한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어 이번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원들과 백스테이지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 정 감독은 취재진에게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서울시향 연주는 너무 좋았어요. 앞으로도 잘하길 바랍니다. 여러분 해피 뉴 이어!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한 뒤 극장을 떠났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정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경찰 조사에 부인과 함께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언론사에 배포한 편지에서 그는 “정 감독님이 이렇게 떠나시고 사모님도 귀국하지 않으시면 진실규명은 요원해진다. 설마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정 감독님께서 이런 식으로 도피하시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날 정 감독이 사의를 밝히면서 “서울시향이 지난 10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한 사람의 거짓말에 의해 무색하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고 한 것에 대해 “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다시 한번 인격살인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정명훈 서울시향’ 마지막 연주… 기립박수로 보낸 관객
입력 2015-12-31 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