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베 “더 이상 사과 안해”… 일본發 ‘말 폭탄’ 불난 여론에 ‘기름’

입력 2015-12-31 04:06
올해 마지막 수요집회가 열린 30일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구성찬 기자

한·일 양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결론지은 지난 28일 이후 일본의 입에선 ‘사죄’가 사라졌다. 일본은 ‘소녀상 이전’ ‘10억엔 지원’ ‘불가역 약속’만 강조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예상치 못한 듯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다. 국내 여론은 양국 정부를 향한 분노로 들끓고 있다.

◇日 “더 이상 사과는 없다”=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합의한 위안부 지원재단 출연금 10억엔(약 97억원)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의 이전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30일 보도했다. 아사히는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소녀상 이전이 일본 정부가 재단에 돈을 내는 전제임을 한국이 내밀하게 확인했다”고 전했다.

일본 외무성 당국자는 국내 언론과의 통화에서 “양국 외교장관이 28일 합의해 공표한 내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아사히 보도 내용을 부인한 것이지만 이면 합의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더 이상 사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총리는 29일 주변 인사들에게 “앞으로 한국과의 관계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다음 일·한 정상회담에서도 더 언급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산케이신문은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회담에서도 말해 뒀다. 어제로써 모두 끝이다. 더 사죄도 하지 않는다”고 재차 못 박았다고 한다. 이어 “이번엔 한국 외교장관이 TV 카메라 앞에서 불가역적이라고 말했고 그것을 미국이 (의미 있게) 평가한다는 절차를 밟았다. 이렇게까지 한 이상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산케이는 전했다.

◇예고된 결과, 분노한 여론=흥사단은 성명을 내고 “한·일 정부가 이번 합의에 대해 ‘최종적’ ‘불가역적’이라고 발표한 것은 자신들의 과오에 문제 제기하는 것까지 차단하는 오만한 독단”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반인륜적 범죄행위는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공소시효가 없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밀실·졸속·굴욕 협상”이라며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도록 전면 재협상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이 위안부 지원재단 설립에 10억엔을 지급키로 한 데 대해서도 “재단 설립부터 향후 사업까지 피해국인 우리 정부에 전적으로 책임을 떠넘겼다”고 비판했다.

시민들 사이에도 협상 결과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직장인 정헌수(25)씨는 10억엔 보상금에 대해 “‘사과가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 네티즌(jjss****)은 관련 기사 댓글에서 “또 일본한테 당했다”며 “일본이 위안부 유네스코 등재를 막기 위해 우리 정부에 접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과한다면서 ‘더 이상 사과하지 않겠다’는 놈이나 사과 받는다면서 그런 걸 합의해준 놈이나 인간 덜되기는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이신철 교수는 “애초부터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엉뚱한 이면합의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성급함이 화를 불렀다”고 평가했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양기호 교수는 “일본 언론의 성숙하지 못한 자세가 아쉽다. 자극적 보도에 대응하지 않고 서로 자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창욱 손병호 심희정 홍석호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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