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부채·과잉 설비에 ‘메스’… 한계기업 솎아낸다

입력 2015-12-30 21:33 수정 2015-12-30 21:48

선박과 조선·철강·건설·석유화학 등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 분야에 새해 벽두부터 구조조정 한파가 닥칠 전망이다. 정부는 30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들 산업의 구조조정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계획을 논의, 구조조정 대상 업체로 분류된 대기업 계열사 54곳에 대해 연내 워크아웃과 기업회생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산업별로는 부채가 심각한 대형 선박 해운 업체에 부채비율을 지금의 절반 가까이로 낮추는 자구책을 요구하기로 했다. 자체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조선업계에는 경영 정상화가 어려운 업체들에 인수·합병(M&A)이나 청산을 진행키로 했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합섬원료 분야의 설비와 인력을 30% 감축하고, 철강 산업도 영업적자를 기록한 합금철 분야의 설비를 40%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건설업계도 시장원리에 따른 상시적 구조조정 추진 방침을 확인했다.

◇해운업계 12억 달러 지원=이날 검토한 정부 방안의 핵심은 해운업계 구조조정이다. 대형 국적선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정상화가 가장 큰 과제다.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연말까지 900%, 한진해운은 750%에 이르는 것으로 정부는 추정했다.

정부는 해운업계에 올해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은 만기를 한 차례 더 연장하기로 했지만, 정상화를 위한 추가 지원은 자체 부채비율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출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김용범 사무처장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이 참여하는 12억 달러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해 해운업체의 부담이 가장 적은 BBC방식(선박 운용 뒤 펀드에서 인수)으로 지원하기로 했다”면서도 “이를 위해선 해당 기업들이 자구노력 등을 통해 부채비율을 400% 아래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해운업계에 내년 이후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은 기한연장을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현대상선은 2017년 이전까지 약 7500억원, 한진해운은 약 5160억원의 빚을 갚아야 한다. 김 처장은 “이 회사들은 기본적으로 소유주가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중장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열린 자세로 적극적으로 자본 확충에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열린 자세’는 기업 매각이나 M&A도 고려하라는 의미로 해석되나, 부채비율이 높고 글로벌 해운업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각각 현대그룹과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다.

◇상시 구조조정 체제 돌입=정부가 해운업계와 함께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 분야로 언급한 조선·철강·건설·석유화학 분야는 이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철강·건설 등은 향후 2∼3년을 견디면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지만, 조선·석유화학 등은 언제쯤 회복될 수 있을지 단언하기 어렵다.

이들 업계는 이미 과도한 설비투자로 산업 전체가 구조적인 불황에 빠져 있다. 정부는 새해 미국의 추가적인 금리 인상,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개별 채권은행이나 업체 차원의 구조조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산업별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집중 논의해 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공급과잉 업종의 구조조정은 필요하지만, 필요한 부분만 신속하게 조치해 경제에 충격을 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을 대형 조선업체로 유지하되 경쟁력 없는 분야는 축소하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에는 새해 상반기에 설치할 ‘조선해양사업 정보센터’를 통해 수익성 평가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석유화학 업계는 과도한 설비투자와 중국과의 경쟁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분야의 설비를 폐쇄하거나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 분야에서 업계에 누적된 적자는 최근 4년간 약 8450억원에 이른다. 업계도 “생산설비의 30% 이상을 줄여야만 수익성 회복이 가능하다”며 정부 방침을 수긍하고 있다. 철강 분야에서도 합금철 분야에서 40% 이상 설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업계의 진단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불경기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기업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어 회생 불가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어느 회사부터 스스로 자구노력에 나서느냐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설비를 줄이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면서 상대가 먼저 구조조정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