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해고 지침’정부안 공개]‘일 못하면 해고할 수 있다’ 인식 확산 우려

입력 2015-12-30 19:47 수정 2015-12-31 00:17

“업무능력 부족으로 상당한 업무 지장이 있다는 점이 인정되면 ‘통상해고(일반해고)’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객관적·합리적 기준에 의한 공정한 평가가 있어야 하고, 교육훈련·배치전환 등 기회가 먼저 주어져야 한다.”

올 한해 노동시장의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저성과자·업무부적응자에 대한 정부의 일반해고 가이드북 초안이 30일 발표됐다. 그러나 정당한 일반해고의 기준 등은 여전히 모호하다. 정부는 구체적인 기준을 밝히는 매뉴얼 형태 대신 대법원 판결로 나온 판례를 정리해 현장에서 참고하도록 하는 ‘가이드북’ 형태를 선택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일반해고’의 예외 기준을 정부가 하위 지침으로 정한다는 것이 그만큼 불가능한 일이라는 반증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노사 현장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분쟁과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쟁 발생 시에만 적용하면 되는 정부의 지침을 공식 발표함으로써 ‘일을 못하면 해고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 해고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저성과자 해고 가능 절차’ 공식화, 고용 불안·혼란 우려=고용노동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직무능력과 성과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및 취업규칙 변경 지침 마련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정지원 근로기준정책관 발제를 통해 가이드북 초안을 공개했다. 요지는 ‘업무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성적이 나쁜 것도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업무능력 부족은 이미 법원 판례를 통해 해고 사유로 인정됐던 것이기 때문에 새롭지 않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존 판례를 바탕으로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절차와 요건을 밝혔다. 일단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 명확한 해고 사유를 규정해야 하며, 공정하고 객관적 평가를 통해 대상자가 선정돼야 한다. 그렇더라도 바로 해고할 수는 없다. 교육훈련·배치 전환 등 개선 기회를 준 뒤에 개선이 없을 경우에 해고가 가능하다. 정부는 또 근로자대표, 노동조합 등이 참여해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상대평가보다는 절대평가 방식을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간담회에서 정부 초안이 판례만 나열해 되레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갑례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판례 해석집을 보는 느낌”이라면서 “개별 사례마다 판례를 제시했는데 판례가 바뀌면 논리가 바뀌어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추후 많은 논의 과정과 많은 판례를 축적하면서 보완할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용자 입장에서 ‘해고를 활용할 길’을 제시해 향후 해고와 분쟁이 더 늘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김상호 경상대 법학과 교수는 “고용부가 내놓는 가이드북이라면 근로자는 어떻게 해야 해고되지 않을 수 있는지 등을 보다 더 알려줘야 (노동계로부터) 오해받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인정, “보편 적용 위험해”=정부 초안에는 정년 60세 의무화와 관련한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원칙도 포함됐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불리해지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 변경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변경의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면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다는 판례는 해당 사건에만 적용되는 특정 판례인 만큼 모든 사업장에 보편 적용될 지침으로 삼으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