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 사는 후칭밍씨는 최근 딸이 다니는 둥청구의 허핑리 제9소학교 학부모들과 함께 5000위안(약 88만원)을 모아 공기청정기를 구입했다. 올겨울 들어 너무 심해진 스모그 때문에 아이들 교실에 공기청정기를 들여 놓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학교 측은 베이징시 교육위의 허가가 없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학부모들은 “스모그가 심하면 학교 문을 닫고, 실외 수업을 자제하는 것 말고는 학교가 하는 일이 없다”면서 “아이들 건강에 대한 위험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일부 사립학교에서는 교실에 이미 공기청정기가 설치돼 있다는 얘기에 화가 더 치밀었다.
지난해 3월 리커창 총리는 ‘스모그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한 규제 조치들을 시행해 왔다. 올해 1월에는 환경보호부 장관에 환경전문가 천지닝 칭화대 총장을 임명하면서 더욱 고삐를 죄어 왔다. 10월까지는 성적이 괜찮았다. 하지만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분석에 따르면 11월을 기점으로 PM 2.5(지름 2.5㎛ 이하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실제 베이징 당국 발표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 PM 2.5의 월평균 농도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6% 감소했었다.
베이징 시민들은 유독 심해진 올겨울 스모그 걱정과 함께 “이유를 모르겠다”며 의아해 한다. 30일 중국 환경보호부 정보센터에 따르면 올 12월 들어 지난 29일까지 공기질량지수(AQI) 100 이하의 스모그가 없는 양호한 날씨는 고작 10일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 19일부터는 딱 하루만 빼고 연일 스모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의 경우 23일 동안 AQI 100 이하를 유지했고, 스모그가 발생한 날은 8번에 불과했다.
중국 스모그의 전통적인 원인은 공장 배출가스, 자동차 배출가스, 겨울철 석탄 난방, 농촌의 볏짚이나 옥수수 태우기 등이다. 여기에 바람과 습도가 스모그 발생 여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국 당국은 올겨울 베이징 주변 지역의 풍속이 평균 초속 1.8m로 예년에 비해 10%가량 줄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베이징 소식통은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지난 9월 열병식으로 인해 공장 가동 중단 등 피해를 봤던 업체들이 당국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오염 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하는 대형 국유기업들이 스모그의 가장 큰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영국 투자은행 NSBO의 이코노미스트 프랭크 탕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중국 내 철강 수요가 2.2% 감소했지만 허베이성의 11월 철강 생산량은 전년 대비 15.7% 증가해 2012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면서 “열병식과 APEC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영기업들이라 수익성은 생각하지 않고 있고 공장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천연가스로 연료를 바꿔야 할 대형 난방공급 기업들도 가격이 떨어진 석탄을 다시 때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전쟁 선포에도 최악… 베이징 스모그 ‘12월의 미스터리’
입력 2015-12-31 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