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본보 경제담당 기자들과 메신저로 대화하면서 내년 2월쯤 경제위기에 봉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말했다. 이유가 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내 감(感)이 그렇다면서 애플 같은 리딩 기업의 부재와 기업의 윤리 상실, 정부의 리더십 부족, 실업과 빚으로 찌든 국민 등을 열거했다. 손대면 톡 터지는 ‘봉선화’처럼 외생변수 하나만 터지면 나락으로 떨어질 임계점에 와 있으며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중간쯤 아니겠냐고 했다. 느닷없는 위기론에 기자들은 농담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날 모 경제지가 1면 헤드라인으로 현 한국경제 상황이 외환위기 직전과 유사한 전조를 보인다며 위기론을 대서특필했다. 노동개혁 관련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금융개혁안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상황이 그렇다는 게 요지였다. 며칠 후 몇몇 신문이 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 한국 언론의 고유습성인 ‘기사 벤치마킹(?)’은 그렇다 치고 청와대까지 경제위기론을 설파하고 나섰다. 국회가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원샷법 등 경제활성화법안 처리를 미루면 큰 위기가 온다는 주장이었다.
설마 일부 언론과 교감했을 리는 없겠지만 청와대가 느닷없이 경제위기를 실토하고 나섰음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더구나 정부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효과 등으로 5분기 연속 0%대 성장을 극복하고 3분기 경제성장률이 1.3%나 됐다며 내년 성장률을 3%대로 장밋빛 전망을 한 터여서 그 배경이 의심스러웠다. 우리 사회의 오랜 관치경제 특성상 위기 자체가 정부의 정책실패를 의미하는데 정부가 이를 실토하고 나선 예는 흔치 않다.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외환위기 징조가 서서히 한반도를 향해 북상할 때만 해도 우리 정부는 튼튼한 경제 펀더멘털 타령만 하다 진짜 위기를 맞았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정부의 경제위기론 설파가 한창이던 지난 18일 한국의 신용등급을 사상 최고치로 올렸다는 점이다. 신용평가기관들이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자료를 토대로 등급을 산정한다고 볼 때 무디스와 한국 정부의 입장이 거의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정부가 장밋빛 통계를 보내지 않고서야 위기론과 배치되는 신용평가는 나올 수 없다. 정부가 똑같은 경제상황을 놓고 두말을 하는 셈이다.
정부가 국회의장과 척을 지면서까지 위기론을 설파한 것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한 차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 탓을 다른 곳으로 돌려 알리바이로 삼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위기라면 애초 최경환 경제팀이 정책운용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부터 따져가야 옳은 태도다. 최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7월 취임하자마자 내수 진작을 위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야 한다며 대출규제를 풀었다. 집값이 오르니 집을 사라는 정부의 군불 때기에 힘입어 올 상반기 부동산 시장에 온기가 돌기는 했다. 그러나 11월 주택 미분양 증가율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서민들의 가계 빚이 1200조원으로 늘어나는 결과만 초래하자 정부가 대출 옥죄기에 나선 것은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 실패를 방증한다. 십수 조원의 추경예산을 끌어다 쓰고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대대적인 잔치를 벌였음에도 도대체 내수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 지금 실업난에 빚더미에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이런 국민을 다독여야 할 정부가 정책운용의 미비점을 보완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탓을 하며 위기만 반복해서 강조하면 국민 신뢰를 저버려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 3차례 거짓말했다가 진짜로 나타난 늑대에 잡아먹힌 양치기 소년처럼.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데스크시각-이동훈] 경제위기론과 남 탓
입력 2015-12-30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