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과 야생. 자연 또는 본능 그대로의 거친 성질을 갖고 있는 이미지나 생명체를 일컫는다. 거칠게 숨을 내쉬는 야생마, 줄기도 이파리도 까슬까슬한 야생초, 맨발로 정글을 휘젓고 다니는 타잔의 야성미를 예로 들 수 있다. 문명사회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두 단어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시인이자 환경학자인 저자는 자연과 문명이 조화를 이룬 의미로 야생을 해석한다.
미개하고 무질서하다고 여기는 야생은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자유롭다. 자연과 문명에 대한 이분법적인 대치구조를 벗어나 야성의 세계와 더불어 충만하고 창조적으로 살 수 있는 문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인간은 자연과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전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다.
인류의 언어, 노래, 춤과 같은 문명은 자연의 장소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따라서 야생을 실천하는 삶이 필요하다. 깊은 숲 속 오솔길을 걸어보고, 구름 덮인 드넓은 초원에 핀 꽃들을 사랑하고, 수많은 강의 상류와 지류를 건너고, 북극지대의 마을을 찾아가본 사람만이 생명의 오묘함을 터득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상화 옮김.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손에 잡히는 책] 야성과 야생… 자연과 문명의 아름다운 조화
입력 2015-12-31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