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함께했던 현실참여 미술운동이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 노동자들의 저항, 수탈당하는 농민 등이 단골 주제다. 최루탄 시위현장에 걸개그림으로 나부끼는 등 학생운동, 노동운동과 같이했다. 선동적인 주제, 거칠고 원색적인 표현 때문에 정권으로부터 탄압받았고 대중들로부터도 ‘예쁜 그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받기도 했다.
그랬던 민중미술이 제도권에 둥지를 튼다. 서울시 산하 서울시립미술관에 내년 봄 민중미술 상설전시실이 생기는 것이다. 1980년 서울에서 열린 ‘현실과발언’ 전시회를 계기로 민중미술이 출범을 선언한 지 36년 만이다.
30일 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과 가나아트센터 등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3, 4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3층에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회장의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한 200㎡(60평) 규모 민중미술 상설전시실이 개관한다. 2000년 이 회장이 작품을 기증할 때 상설전시실을 마련해주기로 한 유준상 초대 관장의 약속이 16년 만에 지켜지는 셈이다.
컬렉션은 오윤의 판화 ‘춤’, 신학철 ‘근대사 시리즈’, 임옥상의 부조 회화 ‘귀로’, 손장섭 ‘조선총독부’, 안창홍 ‘불새’, 황재형의 탄광 그림 등 민중미술 대표작가 40여명의 200여점으로 구성돼 있다. 작가들의 80년대 전성기 대작이 중심이다. 기증 당시만 해도 시가가 총 38억원에 달했다. 현재는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령 오윤의 판화 ‘춤’은 15년 전 100만원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민중미술 상설전시실은 3층 전시실의 일부 공간을 활용한다. 현재 2층에는 천경자 상설전시실이 있다. 전체 컬렉션을 한꺼번에 전시하기보다는 작가별로 순환전 형식으로 선보이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상설전시실 개관은 이명박정부와 보수성향 시의회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유야무야됐다. 이 회장 측에서 약속 파기를 이유로 컬렉션 반환을 요구하는 등 한때 잡음이 나기도 했으나 올해 들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중미술은 1994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민중미술 15년 전’을 열면서 제도권에 진입했다. 하지만 항구적인 전시공간에서 대중과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술평론가 윤범모 가천대 교수는 “민중미술은 일본, 미국, 프랑스 등에도 소개돼 ‘민중아트(MinjungArt)’라는 한국명이 고유명사로 정착될 만큼 전 세계에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한 성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단독] 민중미술, 36년 만에 제도권 안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 내년 상설전시실 마련
입력 2015-12-30 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