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업’이라니 절묘하다. 지금 청년들은 직업을 가질 기회 자체가 드물고, 직업 경험 없이 30대를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청년 일자리 문제는 ‘직업을 잃었다’는 의미의 ‘실업(失業)’이라기보다 ‘일이 없다’를 뜻하는 ‘무업(無業)’으로 표현하는 게 좀더 정확해 보인다. 일본의 청년 지원단체 ‘소다테아게넷’ 이사장 구도 게이(38)와 리츠메이칸대 교수인 젊은 사회학자 니시다 료스케(33)가 함께 쓴 ‘무업 사회’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새로운 언어로 설명하면서 실업이 아니라 무업이 문제라는 것, 청년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저자들은 “2010년대의 일본 사회는 ‘무업 사회’”라며 “누구나 무업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무업 상태에 처하게 되면 그로부터 빠져나오기가 힘든 사회를 ‘무업 사회’라고 정의한다”고 설명한다.
몇 가지 통계를 보자. 일본 내각부가 공개한 15∼39세 무업자 숫자는 81만명(2010년 기준)이다. 후생노동성이 집계한 15∼34세 무업자 숫자는 60만명(2011년)이고, 총무성 노동력 조사에서는 15∼34세 중 무려 483만명(2010년)이 교육이나 훈련을 받고 있지 않는 미취업 상태로 나타났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통의 평범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현실은 일을 하게 되거나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만만하거나 평범치 않은 상황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업은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시대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다. 저자들은 ‘일하지 않는 청년들에 대한 오해’를 11가지로 정리한 뒤 하나하나 반박한다. 대표적인 게 “하고 싶은 일만 하기 위해 일을 고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 조사 자료를 보면, 무업 상태인 이유로 ‘질병·부상’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다음이 ‘진학이나 공부’이고, ‘희망하는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거나 ‘서둘러 취업할 필요가 없다’는 10% 미만이다. 무업 청년들에 대해 “일할 의욕이 없는 존재”라고 단정하는 시각도 문제다. 청년 무업자의 75.5%가 과거에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다. 또 무업 기간의 장기화가 원래 취직을 희망했던 구직자들을 비구직형으로, 더 나아가서는 취직을 희망하지 않는 비희망형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구도 게이는 “청년은 일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일하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일할 수 없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분명 우리 사회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어, 그 부족함이 일할 수 없는 청년의 존재를 통해 변혁에 대한 물음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책은 청년 무업자들의 사연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들의 얘기는 구도 게이가 말한 “우리 사회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면접만 보면 머릿속이 새하얘져” “공부는 좋아하지만 대인 관계가 어려워서” “익숙해지려면 일을 해야 하지만 익숙하지 못하니 일을 할 수 없는 딜레마” “등교도 출근도 불가능한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뭔가를 하고 싶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등 청년들이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척 다양하다. 단순히 일자리 문제가 아니다. ‘일하지 못하는 청년들’이란 주제가 던지는 보다 큰 얘기는 청년 세대를 약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경제성장과 취업을 전제로 한 기존의 복지제도와 사회시스템을 개편해 청년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대로 청년 무업자를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후생노동성이 2012년 공개한 ‘생활보호 수급을 지속한 경우와 취업한 경우가 사회 보장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라는 자료가 흥미롭다. 자료에서는 청년 무업자가 25세부터 65세까지 생활보호 수급자가 되는 경우와 취업을 통해 납세 의무자로 된 경우를 비교해 사회가 부담하는 비용의 차이를 추계하고 있는데, 그 차액이 1인당 1억5000만엔(약 14억6000만원)이나 된다. 일본의 청년 무업자 숫자를 480만명으로 잡고 1인당 평생 1억엔의 사회보장비가 들어간다고 계산하면 480조엔이 된다. 현재 일본의 사회보장 비용이 약 30조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큰 문제인지 가늠할 수 있다. 저자들은 “청년 무업자 문제가 사회보장의 지속가능성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말한다.
책은 “왜 지금 청년 정책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청년들을 위한 지원과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특정 세대에 대한 복지가 아니라 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 ‘無業 청년’ 일본 만의 문제일까요?
입력 2015-12-31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