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조진구] 위안부 해법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입력 2015-12-30 18:18

지난 28일 한·일 외교장관의 위안부 합의는 ‘전격적’이었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올해 양국관계 최대 현안을 해결하려는 지도자들의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고는 해도 입장 차가 컸던 만큼 “양국이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 교섭에서 참가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섭은 거의 없다. 어느 지점에서는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하며,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합의하고 실행해 가면서 보완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일부 보수 정치가와 논객들은 합의의 구속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일본 측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과 사죄와 반성을 부정함으로써 한국 측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군의 관여 인정과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이란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반응은 싸늘하다. 합의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도 외무상을 통한 간접적인 것에 지나지 않아 진실성이 없으며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돈만 대고 위안부 문제에서 손을 떼려 한다는 게 그 이유다.

나아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 중지와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약속했다며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경청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발표문조차 읽어보지 않은 근거 없는 억측, 비판을 위한 비판도 적지 않다. 아직 이번 합의를 굴욕이라거나 실패로 규정짓는 것은 이르다. 왜냐하면 이번 합의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을 큰 틀에서 규정한 것이며, 상호구속성을 갖는 합의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인 해결이 되려면 위안부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일본 정부가 ‘착실히’ 실시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방안이 중요하다. 양국은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자금을 거출하는 재단이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하기로 합의했다. 주목되는 것은 재단의 성격과 운영, 사업 내용 등을 둘러싼 양국 간 추가 협의다. 일본 정부는 10억엔의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재단 운영을 한국 정부에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과거 일본 측이 실시했던 반관반민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과 달리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업에 직접 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원대상이 ‘모든 전 위안부 분들’로 규정돼 있는 것은 사업이 고령의 생존자에 대한 의료복지 지원에 그치지 않고 돌아가신 분들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 사업의 성공은 지난 50년의 한·일 관계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협력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합의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피해 할머니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다.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민간단체와 국민들에게 정부가 설명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지원단체들이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 사죄, 책임자 처벌을 고집하고 있지 않은 것은 고무적이다.

합의가 좌초되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커녕 한·일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양국 정부는 국민들이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왜곡과 과장에 현혹되지 않도록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조진구 도쿄대 국제정치 전공 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