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남호철] 이상기온에 녹는 겨울축제

입력 2015-12-30 18:19

눈과 얼음으로 상징되는 겨울축제라면 가깝게는 일본 ‘삿포로 눈축제’와 중국 ‘하얼빈 설빙제’가 떠오른다.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삿포로 눈축제는 60년을 훌쩍 넘긴 전통의 겨울페스티벌이다. 정교하게 제작된 건축물과 동화 속 주인공 모형들이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얼빈 설빙제는 중국답게 규모로 승부한다. 축구장 100개 크기의 거대한 행사장에 눈·얼음 조각 수천점이 전시된다. 48m 높이의 크리스털 궁전은 일품이다. 얼음바늘과 각기둥 모양의 얼음결정이 공중에 떠 있는 ‘다이아몬드 더스트’도 유명하다.

멀리 캐나다의 퀘벡 ‘윈터 카니발’도 손꼽힌다. 퀘벡시 중심가에 폭 50m, 높이 20m 규모의 겨울 얼음궁전이 들어선다. 눈 9000t이 소요되고 15명이 꼬박 두 달에 걸쳐 완성한다. 꽁꽁 언 강의 얼음을 깨고 열리는 카약대회와 스노래프팅, 개썰매, 빙벽타기, 눈마차, 눈밭 목욕 등 이색 프로그램도 많다.

우리나라에도 겨울축제가 많다. 대표적으로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가 꼽힌다. 매년 100만명을 넘는 참가자가 얼음벌판을 가득 채워 장관을 이룬다. 산천어맨손잡기와 얼음광장, 눈썰매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세계 4대 겨울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좀 다르다. 지금이 과연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 때문에 겨울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울상이다. 꽁꽁 얼어야 할 낚시터가 물바다를 이뤄 축제를 취소·연기하거나 규모를 줄일수 밖에 없어 관계자들의 마음이 얼어붙었다.

보통 얼음낚시를 위해서는 하천의 얼음 두께가 20㎝ 이상 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강원도나 경기도 북부 주요 하천의 얼음 두께는 5㎝에도 못 미친다. 급기야 강원도 홍천군축제위원회는 내년 1월 1∼17일 열 예정이던 ‘제4회 꽁꽁축제’를 전격 취소했다. 경기도 가평군의 ‘자라섬씽씽 겨울축제’와 전북 무주군의 ‘제5회 남대천 얼음축제’도 마찬가지다.

대형 얼음조각 수십개를 전시하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의 ‘하얼빈 빙설대세계’와 충남 청양 알프스마을의 칠갑산얼음분수축제, 경남 거창 금원산얼음축제, 경기도 가평 청평얼음꽃축제도 줄줄이 미뤄졌다.

이미 시작한 축제는 반쪽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8일 오대천에서 개막한 강원도 평창송어축제는 눈썰매 등 일부 놀이시설만 운영하다 31일 주 행사인 얼음낚시터를 개장한다. 25일 시작된 강원도 영월 동강겨울축제도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얼음낚시를 금지하기로 했다.

다행히 내년 1월 9일로 예정된 화천산천어축제는 문제가 없는 상태다. 메인 프로그램인 화천천 낚시터 얼음두께가 현재 15㎝가량이어서 축제에 영향이 적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초 포근한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보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혹시 모를 얼음낚시터 안전을 위해 기존보다 낚시터를 대폭 늘리고, 낚싯대를 드리우는 구멍을 기존 2m 간격에서 4m로 늘리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같은 겨울축제이지만 눈이나 얼음과 상관없는 거리 행사는 오히려 날씨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인천 중구 개항장지구에서 진행 중인 ‘신포어울림 빛축제’에는 예상을 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제7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 축제 방문객도 많이 증가했다.

기후는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연히 겨울축제도 기후변화에 맞춰 방향 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 관광정책과 개발계획 수립에 기후 조건을 면밀하게 검토해 반영해야 하는 이유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