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이 恨은 어찌할꼬… 외교부 ‘위안부 협상’ 뒤늦은 설명

입력 2015-12-29 21:46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오른쪽)가 29일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을 향해 두 손을 들어 항의하고 있다. 외교부는 임 차관을 ‘평화의 우리집’, 조태열 2차관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으로 보내 한·일 외교장관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할머니들은 “우리를 왜 두 번씩 죽이느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구성찬 기자

파르르 목소리가 떨렸다.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손가락과 눈동자까지 떨림은 번져갔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한국과 일본 정부 간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하루가 지나서야 찾아온 정부 관계자에게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가며 말했다. 울분을 삭일 때 나오는 그런 말투였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29일 오후 2시쯤 위안부 할머니들이 머무는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 ‘평화의 우리집’을 찾았다. 김복동(89) 이용수(88) 길원옥(87) 할머니의 얼굴은 어두웠다. 임 차관이 들어서자 이용수 할머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이 할머니는 “먼저 피해자를 만나야 되는 것 아니냐. 고통당하는 우리를 왜 두 번씩 죽이느냐”고 울먹였다. 어느새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임 차관은 바닥에 앉아서 소파에 앉은 할머니들을 올려다봤다. 이용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죄송하다고 했다. 그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부의 가장 큰 원칙은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더 가기 전에 어떻게든 결말을 지으려고 저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냉랭했다. 할머니들이 바라는 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직접 사과와 법적 배상이다. 이번 회담에서 이런 것들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할머니들은 말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우리가 바라는 건 아베가 나서서 ‘잘못했다,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 협상이) 타결 안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도 철거할 권한이 없다”고 힘줘 말했다.

비슷한 시간에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으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들어섰다. 방 안 공기는 싸늘했다. 강일출(88) 할머니는 조 차관이 오기 전부터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장관이고 뭐고 마음대로 못해. 이 문제는 후세들이 똑바로 해야 돼. 할매들 손을 잡고 그래도 안 되는 거야”라고 했다.

조 차관이 회담 결과를 설명했지만 할머니들은 인정할 수 없다고 되받았다. 유희남(88) 할머니는 “정부에 계신 분들은 잘한다고 하셨겠지만 우리는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냉정해도 할 수 없다. 다시 가서 (회담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할머니들은 마음에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듯 말을 이어갔다.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한참동안 조 차관을 쳐다본 김군자(90) 할머니는 “피해자는 우린데 정부가 어떻게 합의를 하느냐. 우리는 인정 못한다. 합의하는 것을 끝내라”고 했다. 이옥선(88) 할머니는 “(정부가) 할머니들 몰래 협의를 해서 할머니들을 울렸다”며 “정부가 할머니들을 팔아먹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얘기가 끝나자 조 차관이 입을 열었다. 그는 “할머니들의 말씀 깊이 새겨들었습니다. 할머니들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일본 정부와 대표자로부터 정식 사죄를 받은 것이 이번 회담의 의미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할머니들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조 차관은 “코끼리 다리 만지듯 부분만 보지 마시고 전체의 모습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의미를 평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합의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될 때까지 노력하겠다는 말씀드립니다”라고 말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두 차관이 할머니들에게 쓴 시간은 채 1시간이 되지 않았다.

심희정 기자, 광주=홍석호 기자

[관련기사 보기]